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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우 Aug 01. 2021

아무튼, 혼술:기분 좋은 혼술과 한라산 2잔의 용기

이자카야 부엉이(미미주쿠 ミミズク) 신논현(강남대로)

이자카야부엉이(미미주쿠ミミズク) 신논현이자카야부엉이(미미주쿠ミミズク) 신논현


 뒷골목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이자카야 부엉이.


 오늘도 혼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몇 번을 와보니 믿음이 가는 곳이다. 강남지역에서는 의외로 혼술 할 곳이 별로 없다.  지역 상권의 특성상 오래가는 노포도 없고, 진득한 퀄리티의 맛집도 찾기 힘들다. 게다가 내가 중요시하는 위생문제로 더 그렇다. 얼마 전 역삼역 근처에 이자카야에 갔다가 기대와는 너무 다른 위생 수준에 더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오늘은 회사에서 조금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그 기분을 약간 더 연장하고자 예정에 없이 오게 되었다. 뭐, 충동적으로 오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다. 줄 서는 곳이라 들어서 항상 오픈 시간인 6시에 오곤 하다가 오늘은 7시에 와보니 내가 늘 앉던 구석 자리는 역시나 다른 사람의 몫이 되어 있다.


 몇 번 오다 보니 주문 요령이 생겼다. 음식을 바로바로 조리해 주는 곳이다 보니 주문하면 나오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하지만 불평할 수 없는 퀄리티임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주문할 때 한 번에 모두 주문한다. 술도 몇 병 안주도 몇 개.


 주문할 때마다 꼭 챙기는 일본 보리된장을 얹은 오이는 방이동 달파란을 갔을 때 만나는 토마토 코울슬로 같은 느낌이다. 채소에 열광하기 힘든데. 이건 나를 열광하게 만든다. 이 맛은, 오이에 된장 얹은 것 치고는, 한식집 기준으론 그냥 주는 찬일 것만 같은 이 한 접시가 무려 7천 원인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할 정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다. 이미 토마토 코울슬로를 시도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진짜 맛'을 느끼려면 그곳에 가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기린을 시키고 싶은 걸 꾹 참고(맥주를 끊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보겠다고) 진저 하이볼과 한라산을 한병 주문한다. 한라산이 있어 다행이라고 항상 생각한다. 이런 수준의 이자카야(음식의 질 기준에서)는 소주를 취급하지 않는 곳이 허다한데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방문하게 해 주는 한 가지 요소다. 참이슬 보다는 높은 도수로 한 병의 아쉬움을 조금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게다가 11월이 되었고, 어김없이 일 년을 기다려온 방어의 철이 다가왔다.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에 메뉴판을 폈고, 당연하다는 듯이 맨 위에 방. 어. 가. 있. 다. 고민 없이 방어 작은 접시와, 전부터 주문하려던 닭 목살구이를 시켰다. 된장 오이도 역시. 기대했던 상차림으로 한 시간 여의 시간을 채운다. 오늘 방문한 목적에 맞는 기분 좋은 구성이다.


 서울에서의 방어는 촤~악 하고 입에 달라붙기가 쉽지 않은데. 기대했던 바로 그 맛이다. 제철도 제철이지만 칼을 잘 쓰는가 보다. 막혀를 가지고 있는 내 입맛에도 뭔가 좀 다르게 느껴진다. 하이볼을 끝내고 방어와 한라산의 조합을 위해 새로 한 잔을 시작한다. 접시 한쪽에 회와 함께 방어 타다끼가 놓여져 있다. 방어 타다키는 처음 먹어보는데 한라산과 함께 하니 맛이 살아난다. 참치 타다키에 뒤지지 않는다.


 한라산-방어-오이의 꿀 조합이 이어진다.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아직 한라산은 제법 남아 있다. 잠시 뒤에 나올 닭 목살 구이를 위해 남은 소주의 양을 계량하고 있다. (소심 모드) 그래도 술과 안주의 발란스는 중요하다.


 눈앞에 놓인 한라산 소주병의 라벨을 한 번 흘낏 본다. 뒷면의 라벨이 좀 어색하다. 세련된 도시남이 산뜻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제주에서 산다"라는 카피와 함께. 이런 오글거리는 그림은 제주 정서가 아닌데(라며 한때 제주 도민으로서 나름 평가해본다)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두 점 남은(메뉴판에 작은 접시는 친절하게도 14점이라 쓰여있었는 데, 깊은 배려란 생각이) 방어에 와사비를 살짝 얹어 먹어본다. 참치보다 100배(마음속으로 1,000배)) 낫다고 외치고 있다. 엄청 비싼 냉동 참치보다 훨씬 좋다(배꼽살은 제외).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닭 목살 구이가 등장한다. 아껴두다 몇 번 만에 주문한 메뉴다. 이 집의 60% 이상의 메뉴를 섭렵하고 난 다음에야 드디어 주문. 여기 부엉이는 숯을, 기대되게 쓰는 느낌이다. 주방의 환풍 시설은 이 집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이런 스케일의 환풍 시설은 본 적이 없다. 물론 큰 레스토랑에는 많겠지만 동네 구석의 소규모 이자카야 치고는 당당하리만큼 큰 후드가 있다. 살짝 사장님을 존경해본다.


 처음 닭 목살 구이에 도전해 본다. 아직 한라산이 반 병 남은 걸 확인하며 안심한다. 아, 이건 도대체 무슨 맛인가. 닭이라면 중학교 때부터 1인 1 닭을 착실히 실천하며, 모든 경제 단위를 닭을 몇 마리 먹을 수 있는 가로 계산하던 20대를 보낸 나인데. 이건 정말 '첫'맛이다. 접시 위에 놓인 목살의 양은 '도대체 내가 몇 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있는 건가'싶을 정도이지만. 닭의 세계에 이런 맛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엄청 맛있다기보다는 특별한 맛이다. 그리고 같이 나온 이 소스는. 막혀인 나로서는 짐작키 힘들지만 겨자맛도 돌면서 상큼함이 도는 게 수 가지의 재료 중 겨자와 레몬 정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추측도 해본다.


 이제 종반전이다. 예정했던 시간이 10분도 안 남았다.(가정의 평화를 위해 늦은 술자리를 지양하고 있다) 오늘 혹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술을 남기는 용기'를 부려볼 수도 있겠다는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다. '시간은 10분, 남은 건 5잔'.  1년 전이었으면, 시간보다는 남은 나의 미련(남은 술)이 먼저라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아니다. 원칙은 원칙고 약속은 약속이다.(물론 항상은 아닙니다만) 나이 들면서 좋은 건, 이런 원칙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고 또 실천한다는 것이다.



 아... 옆 테이블에서 도미머리 구이를 시켰다. 오늘 노렸던 메뉴인데. 너무 많이 시켜서 야만인처럼 보일까 봐 못 시킨 메뉴. 다음엔 꼭 주문해 보겠습니다(라고 다짐).


 보면 볼수록 주방의 움직임에 감탄한다. 착착, 탁탁 빈틈없는 움직임이다. '이 분들 뭘 좀 하시는 분이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아.... 오래오래 장사 잘하셔서 유지하시기를. 앞으론 한 달에 한 번만 올게요. 지금 '절약'미션 실천 중이거든요.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한라산 두 잔 남기고 갑니다.(오늘은 용감한 사람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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