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세이 Oct 03. 2023

핵가족에서 핵핵가족으로

내가 떠난 우리 집은 안녕할까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긴 연휴였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가족 얼굴을 본 게 얼마 만인지. 주말이 전부였을 땐  '애들이 몇 시에 갈까, 더 챙겨줄 건 없나'  조마조마하던 부모님이었다. 이번 연휴 동안은 엄마 아빠 얼굴이 편안해 보여 내가 다 좋았다.



이렇게 넷이서 여유롭게 하루를 즐기는 날이 다시 오다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집은 핵가족에서 핵핵가족으로 쪼개졌다. 나는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언니는 회사가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각자의 공간에서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우리 집에서 엄마 집이 된 이곳. 세월이 흐를수록 새롭다. 4명이 살 땐 몰랐다. 그 집이 그렇게 넓은 곳이었는지. 안방에 티비가 생기고 난 후로 거실은 쓸모를 잃었다. 해가 지면 집안은 컴컴했다. 불 꺼진 방만 늘었다. 언니와 내 방은 있는 둥 마는 둥 벽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집안 풍경은 7년 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옛날에도 언니와 나는 방에 콕 박혀 있는 걸 좋아했다. 각자 방에서 사부작사부작 거렸는데, 성격이 원체 까칠이라 누가 보거나 간섭하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문 너머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존재감에서 오는 안도감이랄까. 얼굴 보고 대화하지 않아도 곁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된다. 오랜만에 누운 내 침대가 낯설어 긴장했던 밤. 거실에서 들려온 아빠의 코골이를 ASMR 삼아 잠들었다.



엄마 아빠는 집에 오면 매일 이 공허함을 느끼려나. 시간이 꽤 지나 적응했을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언니와 나를 맞이하는 엄마를 보자니 마음이 아프다. 반기는 깊이만큼 여전히 빈자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살가운 딸이 아니라 이 얘기는 속에 넣어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etc.fra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