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수 없으면 위로할 수도 없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바람 앞에서 언젠가는 허물어지고 만다.
영원한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쁜 감정이든 슬픈 감정이든 모든 감정은 나름의 유효 기간을 지닌다. 우리가 타인을 위로할 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슬픔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시간이 약이야”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없어요” 같은 말을 듣는 순간 ‘좋은 말이지만 내게는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라는 표정을 지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시간은 삶의 하류로 흐르지 않고 슬픔이라는 웅덩이에 빗물처럼 고여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슬픔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란 말에는 잘 기대지 않는 편이다.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하면 도로 삼켜버린다. 너무 쉬운 위로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단, 이 말이 단순히 ‘시간이 문제를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너는 지금보다 단단해질 테고 그땐 너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믿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예외인 듯하다. 적어도 그런 경우에는 적잖은 위로가 된다.
위로란 무엇일까? 절망의 수렁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기 위해선 어떤 방법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 할까?
단언컨대, 슬픔의 방에 홀로 들어가 고개를 파묻은 채 펑펑 울고 있는 사람을 향해 어서 나오라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행위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느린 노크’로 인기척을 냈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문을 벌컥 열어젖히기보다, 스스로 눈물을 소진하고 슬픔을 말릴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참된 위로가 아닐까.
살다 보면 무턱대고 다가가기보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 그 어디쯤에서 인내심을 갖고 누군가를 잠잠히 기다려 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그 사람을 기다릴 수 없으면 위로할 수 없고, 위로할 수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주인> 중에서.
덧) '가을의 문'이 열렸습니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마음의 열기를 식혀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곧 삶의 들판에 스산한 바람이 흐를 텐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부디 시간의 무게의 견디고 스스로 마음을 지켜냈으면 합니다.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누리면서 가을을 건너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각자의 리듬으로, 마음의 주인으로서...
_ 이기주 드림.
카카오음(mm)에서 ‘생각의 숲’을 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