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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주 Dec 27. 2023

평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깃든 단어에 대하여


“집 근처 카페에서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는데 그중 하나가 홈런이었어!”



평소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문장이다.


장소에 상관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업무를 보는 소위 '디지털 유목민' 입장에선 작업이 잘될 것 같은 공간을 찾아가는 일은 야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일과 비슷하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간 카페에서 일정 분량의 원고를 쓰면 ‘진루타’, 의미 있는 글감이 떠오르거나 막힘없이 글이 술술 써지면 ‘홈런’이라고 마음속 기록지에 표시하곤 한다.


그렇다면 노트북 작업하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방문한 카페에서 몇 줄 쓰지 못한 채 머리카락만 쥐어뜯다가 쓰디쓴 커피만 마시고 나왔다면? 그날은 ‘헛스윙’ 또는 ‘삼진’으로 기록된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과거에 홈런을 날렸던 카페를 꾸준히 방문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이다. 


글쎄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작업실이 따로 없는 내가 “공간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는 명제를 가슴에 품고 일부러 찾아가는 카페의 조건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가사 없는 음악이 흐른다.

2 책상과 의자가 불편하면 안 된다.

3 통창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한강에스프레소, 라는 곳에서


각각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조건이다. 문제는 위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카페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곳, 즉 창문 바깥의 풍경과 은은한 연주곡을 벗 삼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좋은 카페가 눈에 들어올 때도 있지만, 평일에도 노트북 가방을 짊어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탓에 그런 곳에선 느긋한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가 없다.


마음에 드는 카페라고 해서 너무 자주 가는 것도 곤란하다. 카페 주인장과 필요 이상으로 친해져 노트북을 펼치기도 전에 대화를 나누느라 작업이 뒷전으로 밀리는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처음엔 날 알아보지 못하던 카페 주인장이 어느 날 갑자기 빙그레 웃으며 다가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경우도 있다.

“혹시 이기주 작가님인가요? 맞죠? 작가님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이때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순히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거라면 나도 좋지만, 그게 아니라 “제가 고민이 있는데 조언을 좀 부탁드립니다”라면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볼 땐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난 그저 평범한 카페에서 조용히 노트북 작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나저나 당장 내일부턴 어느 카페로 가야 하지?’




평소처럼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생각을 한 줄의 실처럼 간명한 문장으로 뽑아내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지닌 카페를 찾아간 날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회사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려왔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거야!” 


옆에 있던 누군가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평범? 야, 솔직히 말해봐. 정말 평범한 걸 원하는 거야? 아니면 여러 조건이 평균의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원하는 거야?” 


평범한 삶을 원한다고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평범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옆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나도 덩달아 숙연해졌다. 


누구나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중얼거린 경험이 있으리라. “내가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거야…”라고.


평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특별하지 않다는 걸까. ‘평범’의 사전적 정의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라는 뜻이다. 대체로 ‘중간’, ‘보통’ 같은 말과 동의어로 쓰이지만, 그 뒤에 ‘삶’이 결합하는 순간 사회적 맥락을 지닌 단어로 돌변한다. ‘남들만큼’이라는 단서가 따라붙는 탓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평범한 삶’은 무난한 일상을 반복하는 보통의 삶을 가리키지 않는다. 웬만한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돼야, 혹은 어떤 수준이나 대열에 속하진 못하더라도 크게 뒤처지지 않아야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인식이 퍼져 있는 이유는 뭘까. 본래 인간 욕심의 지향점이 평범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데다, 대부분 현대인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평범의 기준을 설정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우리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문장에는, 남보다 뒤처지지 않겠다는 경쟁의식과 함께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의 목표를 두고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사회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목표에 닿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한편에는 뼈저린 좌절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평범하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살기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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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보편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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