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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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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an 28. 2021

코로나 시국, 혼자 공부하는 "의지"에 대하여

집에서 공부하기 싫어서 뱉는 자기변명과 합리화

그런 날이 있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오늘 공부는 글렀다.’ 싶은 날이 있다. 분명 제시간에 일찍 일어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꿈속에서 발랄하게 뛰노는 날이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폈지만 내 마음이 온몸으로 공부를 거부하는 날이 있다.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그래도 나름 몰입할 것을 알지만 시작이 너무나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날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참 맞는 말이다. 아무리 싫거나 힘든 일이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유지하는 데는 큰 힘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은 반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쉬운 거지, 그 전은 매우 어렵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온몸으로 그 행동을 거부하는데 이를 의지로 이겨내고 그 행동을 시작해야만 한다.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해야 하는 이유보다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열심히 찾아낸다. 그걸 시작하기 전에, 또는 그 이유들을 다 이겨내고 자리에 앉아서 하는 행동이니 시작은 사실 시작 이상으로 힘들다. 그래서 또 시작은 반이다.



오늘은 공부에서 그 반을 해내지 못한 하루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서 책을 폈는데 그마저도 읽히지 않았다. 내가 저자의 말을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당장의 검은 글자를 기계적으로 읽고 그러자마자 머릿속에서 폐기 처분하는 느낌이었다. 다음으로는 시집과 필사 공책을 꺼냈다. 시에 몰입하려고 해도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았다. 검은 글자만 머리에 들어올 뿐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이 시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계속 페이지를 넘겨가며 맘에 드는 시를 찾았다. 하지만 한 권을 다 넘길 때까지도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쾅 문을 닫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는 포기하자는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마저도 나를 배신했다. 여럿이랑 함께 하는 게임은 피곤하다는 생각, 혼자 하는 게임은 이걸 왜 하지 싶은 생각과 귀찮음이 몰려왔다.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오늘은 안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내게 이런 날은 매우 자주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공부를 하기 싫은 날은 어떻게 하냐? 많은 친구들은 장난식으로 “그럼 놀아!”라고 답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놀라”고 답한 친구도 몇 있었다. 사실, 하기 싫은 날은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이 맞다. 하지만 노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 뇌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수험생활에서 공부만큼이나 중요한 건 적절한 휴식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시작부터 아무것도 안 한 날이라든가, 해야 할 일을 다 못했지만 쉬는 날에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 그런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어떡하지? 이러고 쉬어도 될까?”


이 생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해야 할 일은 안 했다는 죄책감은 나를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투두리스트를 하나 둘 지워나갈 힘을 주지도 않는다. 애매한 휴식은 정말로 나를 휴식시키지 않고, 백그라운드에서 계속해서 불안과 자책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돌린다. 그리고 그 애플리케이션의 배터리 소모량은 우리의 충전량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우리는 쉬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전혀 쉬지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면서 말 그대로 시간만 날려버리게 된다.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 쉼이 불편하고 불안함은 알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일하려고 한다.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몸은 이미 방전돼 버린 걸 어떡하나. 그럴 때 우리는 유튜브에서 이런 영상을 검색한다. 공부 쓴소리, OOO 합격수기   

  

한 친구는 내게 합격수기를 보라고 조언했다. 합격수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따라 하며 계획을 세우라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 내용을 보면 의지가 뿜뿜 하지 않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합격수기를 보면 공부의지가 뿜뿜 하기보다는 자기비하가 뿜뿜 한다. 얜 이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하는 사고 회로가 돌아간다. 그 비교를 멈출 수가 없다. 나의 성공한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합격한 저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과 고시생 신분인 나의 추레한 모습을 비교하기만 한다.     



다른 친구는 내게 공부 쓴소리 영상으로 의지를 다지라고 권했다. 사실 공부 쓴소리 영상은 유튜브 수험생들 사이에서 매우 핫한 영상이다. 유명한 인강 강사들이 나와서 “너희는 이래서 안된다!”, 또는 “그래 그렇게 펑펑 놀아라. 그럼 니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지겠지.”하는 식의 열변이나 조소가 많다. 대개는 황금만능주의, 학벌 만능주의 사상을 베이스에 깔고 합격을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하는 영상이요, 의지 드립 노력 드립으로 되지 않는 것은 모두 네 잘못이라는 식으로 공격하는 영상이다. 


대표적으로 공신닷컴의 강성태 영상이 있다. 그는 “여러분들은 공부를 안 해요. 공부법이고 나발이고 지랄이고 간에 공부를 안 하는데 무슨 변화가 있습니까. 안 하는데. 여러분 지금 보시는 이 동기부여 강좌 보면 아,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해서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안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고요. 여러분 제가 이 강좌에서 공부를 역전한 사람들 이야기들 생생하게 말씀드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공부를 안 해요. 얻다 대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까? 어디다 대고 남 탓이에요? 자기가 안 해놓고.”라고 역설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열심히 공부 계획만 짜는 10시간보다 당장 공부하는 5분이 정말 내게 도움이 되는 시간인 게 맞다. 하지만 요즘 정신의학자나 상담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은 대개 공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상황이다.

강성태의 공부쓴소리 영상 / 윤대현의 시작이 어려운 이유 영상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대현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거대한 시험, 거대한 목표가 있을수록 우리가 그렇게 훈련된 불안 시스템은 훈련받은 대로 최고치로 올라갈 수밖에 없고, 최고치로 올라가면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딴 걸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불안을 더 높이면 안 되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불안에 대해 내가 혐오감을 느끼거나 이상하다고 보는 거는 정말 안 좋다는 거죠. 왜냐면 그건 정상이고 잘하고 싶은 이쁜 마음이거든요, 그거에 대해서 그래서 아이고 귀여운 불안아! 그렇게 시험 잘 보고 싶어? 하하! 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다는 거예요. 그리고 너무 힘들면 어쩔 수 없으니까 뭐 먹는 걸로 풀든 오락을 하든 좀 해야돼요. 그렇게 해서라도 불안을 좀 줄여야 되고.”


잘하고자 하는 심리가 우리의 불안을 자극하고, 적절한 스트레스를 넘어선 과도한 불안은 우리의 능률을 떨어트린다. 앞에서 내가 말한 것처럼 ‘공부해야 하는데’, ‘잘해야 하는데’ 하는 식의 불안을 처리하느라 뇌의 절반이 쓰이고 있으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거다. 강성태의 말처럼 “핑계를 대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불안하고 너무 잘하고 싶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시작이 어려운 것이다.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는 끝났다. 내 정신과 주치의는 내게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세상에 인간의 의지라는 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요. 그냥 환경과 자기의 흥미가 있는 거죠. 다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소음 같이 집중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한 환경과 그렇지 못한 환경이 있는 거고요. 자기가 해보니까 잘 되고 재미있어서 그 행동을 계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인 거예요.” 정말로 그렇지 않나?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즐거워서, 재밌어서 하는 것이 일이나 공부의 본령이다.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함’인데 억지로 의지로 하는 계획은 우리의 힘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결코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하는 과제를 함에 있어서, 의지를 다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 왔다. 억지로 의지를 되살리며 합격수기를 읽고, 나를 비하하는 영상을 보는 것보다는 주변 환경을 돌아보며 방해 요소를 체크하고 지워버리자. 그래도 안 된다면, 한 시간이라도 마음 놓고 쉬자. 그래도 안 된다면 정말로 내가 이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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