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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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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ul 21. 2022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그냥 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도 괜찮을까?

그럴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싫다고 안 해도 괜찮을까?

그래서는 안 된다.


노력 없이 과실만 따먹고 싶어 해도 될까?

그럴 수 있다.

노력 없이 과실만 따먹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이 사실이 나를 힘겹게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게 5개월이나 됐다. 일기를 쓰지 않은 것도 그 정도고, 공부를 하지 않은 것도 그 정도다. 2월 말에 5급 공채 1차 시험을 망친 다음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행동 없이 생각만 하며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흘려보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우울,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현재는 미뤄둔 채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생명활동만 유지했다.


내 생각은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더라도, 내 몸은 현재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현재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제는 7급 공채 1차 시험이 내일로 다가왔고, 교원임용시험은 130일 문턱이 깨졌다. 더 이상 멈춰있어서는 안 될 때가 왔지만, 나는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5월에 교육실습을 다녀온 다음 몸에 힘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정신도 맑고 무척이나 청명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고 나는 교육실습의 기억으로 탄력을 받아 더 나아가는 게 아니라 실습기간에 다시 머물렀다. 스터디 카페를 끊어서 공부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6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총 공부한 시간은 40시간이 채 안된다. 51일간 40시간이니 하루에 1시간도 못한 것이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나에게 말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이 어딨냐. 해야 되는 일이랑 안 해도 되는 일이 있는 거지. 네가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면 해야 되는 기라."

지금 나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8월에는 졸업을 한다. 더 이상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나를 '경력 공백'에서 보호해주지 못한다. 정말 내가 벌어서 내 몸과 엄마를 부양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공부는 너무나도 하기 싫은 일이다. 귀찮고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코앞에 닥쳐 있다. 지금 하고 싶은 게임을 한 시간 하면, 나는 다음 시험을 위해 1년이나 하기 싫은 일을 더 해야 한다. 현재의 행복 1시간을 구매하는 대가로 미래의 고통스러운 8760시간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다. 내 머리는 그렇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게임을 했다. 여섯 시간이나 했다. 공부를 여섯 시간 정도 하고 게임을 한 시간 했다면 괜찮겠지만, 공부는 일주일 동안 3시간 하고 게임은 일주일 동안 40시간은 한 것 같다.


친구들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은 그냥 한다고 했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분석하지 말고, 계획 짜지 말고, 그냥 한다고 했다. 하기 싫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냥 하라고 했다. 나는 그냥이 잘 안 된다.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의사도 나에게 그랬다. 이메다 님은 생각이 너무 많다고. 생각을 줄이고 한두 번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행동했을 때 나에게 크게 손해가 오지 않는 일이라면, 일단 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야 그 일이 나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판단할 수 있고, 내가 그 일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 맞는 말이지만, 생각을 줄이는 일이 쉽지 않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른다. 나는 내 능력을 못 믿겠다. 지금까지 1주일 이상 꾸준히 공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수험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수험생활에 돌입하는 것 자체가 안될 것 같고, 합격수기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심히'의 기준에는 절대 미치지 못할 것 같다.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당연히 합격하지 못할 것만 같고, 그러면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인증하는 꼴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고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 두렵다.


나는 이 복잡한 감정을 '귀찮다'라고 퉁친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표면적인 감정이다. 나는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두렵다. 내 경험은 대개 열심히 하고 성공하거나, 평균 이하의 노력을 들이고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경험들이었다. 5급 공채시험 1차 합격도 공부하지 않고 들어가서 나온 결과였고, 수능도 솔직히 나는 남들처럼 공부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좋게 봐줬다. 실력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우했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가장 뛰어난 그룹에 속해야 할 것만 같고, 그렇지 않다면 적은 노력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정도의 성취는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스스로의 망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느낀다. 성공에 대한 부담과 내 능력에 대한 불신은 나를 도전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도전에 따른 예측 불가능한 결과는 그 자체로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내가 그냥 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이 상태도 괴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행동하고 변화하는 것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내 기대와 주변의 기대가 깨지는 상황을 보면 당연히 자존감이 무너질 것이고, 공부를 하는 과정도 당연히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있는 것도 괴롭다. 공부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화를 내며 자책하는 것도 힘들고, 내가 행동해서 결과를 내지 않으면 깨지지 않을 그 가상의 기대들에 짓눌려서 느끼는 압박감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어차피 어떻게 하나 고통스러울 것이라면,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간에 결과가 나오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행동 없이 나오는 결과는 없고,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괴롭다. 결국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의 해결책은 그냥 하는 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다.

내일은 하기 싫은 일을 그냥 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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