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의 힘

200517

by 진진

5월 셋째 주 일요일, 오후 7시가 되었는데도 밝다. 평일에 퇴근하고 나오면 여전히 밝다. 퇴근 후에 해가 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하루가 아직 덜 끝난 듯하다. 주말에는 8시에 가게 문을 닫아서 아직 밝을 때 퇴근한 적은 없지만 주말은 일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 괜찮다.

다만, 저번 주처럼 평일의 일을 주말까지 끌고 오지만 않는다면 모두 괜찮다. 이번 주 금요일에도 주말에 조금 마무리 짓고 싶은 업무가 있었지만 일부러 가져 오지 않았다. 애쓰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기를 연습 중이다. 평일에 책방 생각을 멈추고, 주말에 회사 생각을 멈추기 위해 아예 다른 일을 시도했다.

수요일에 목공 수업을 들은 지 2주 차가 되었다. 한 달 치 수업이라 벌써 반이나 한 셈이다. 두 번째 수업에서 목공에 쓰일 공구를 다뤄보고 내가 만들 가구의 큰 틀을 잡았다. 처음 전동 드릴을 써 봤다. 힘으로 넣지 말고 드릴에 몸을 맡기라는 선생님의 조언에 힘을 주지 않았더니 나사가 들어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힘을 줘야 한다. 여기서도 강약중강약이 중요하다. 나사가 들어가고 나올 때까지 드릴을 멈춰서는 안 된다. 나무가 튈 수 있고 제대로 박히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 전에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비록 퇴근 직후 저녁도 먹지 못한 채로 붐비는 홍대를 지나 수업을 받아야 하지만 작년 글쓰기 모임도 그렇고 퇴근 후의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진다. 어느새 수요일만 기다리고 있다. 이번 수업은 꽤 짧게 끝나 아쉽지만, 공방에서 이런저런 작은 가구들을 만들고 싶다. 원하는 가구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서점에 필요한 가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만드는 가구도 서점 싱크대 옆에 놓일 책장이다. 책장인지 협탁인지, 헷갈리는 가구를 만들고 있다. 수납할 공간이 적은 작은 서점이라 서랍이 들어간 가구를 만들고 있는데, 선생님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며 도면을 그릴 때 다리를 제안했다. 다리를 넣기로 정하고 나무를 제단하고 보니 서랍을 넣기에는 길이가 너무 짧다. 가운데 공간에 책을 넣어야 하는데, 책등 길이를 220mm라고 기준 잡았을 때 여유 공간까지 치면 서랍이 너무 옹졸하게 들어가야 한다. 다시 다리를 넣을 수 있도록 길게 나무를 자를 것인지, 디자인을 수정해 새로 다리를 넣을 것인지, 서랍의 폭을 줄일 것인지 정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원하는 대로 방향을 정하고 다시 나무를 자르기로 했다. 이미 나무를 자른 상태라 걱정했는데 선생님이 '그럴 줄 알고 길게도 잘라놨지.'라며 장난스럽게 말씀해줘서 고마웠다. 실수해도 괜찮은 실수가 당연한 초보의 순간이다. 그렇게 따지면, 회사도 그렇고 서점도 그렇고 모든 게 초보인데 힘들고 막막한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잘하고 있는 건지 그만 의심하기로 한다.

가구 수정에 대한 의사결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실천으로 이어졌다. 실습이 아닌 실전으로 사포질을 하고 본드를 바르고 나무의 각을 맞추고 못질까지 했다. 얼른 그 가구를 서점에 들여놓고 싶다. 원래는 서점에 가는 게 일상의 멈춤이었는데 서점도 일이 되어가다 보니 또 다른 취미를 만들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일의 출근이든 주말의 개점이든 잠깐 도망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만든 가구. 서랍 손잡이를 제외하고 모두 내 손을 거쳐갔다.
하단에 독립출판물 재고를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가구. 책방에 필요에 따라 생각한 대로 가구를 만들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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