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친구의 어머니가 텀블벅 펀딩에 성공하셨다. 컴퓨터 선생님이신 친구의 어머니는 엑셀 참고서를 전자책으로 제작해, 텀블벅 펀딩으로 출간하신 경우다. 종이책을 내지 않았으니 서점에 들여놓을 수는 없지만, 친구는 농담으로 내 책방에 책을 입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곰곰 생각해보다 안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서점에 입고 기준은 간단하다. 1. 여성 서사이거나 2. 여성 작가 쓴 책 중 책방 주인이 좋아하는 책. 여기서 1번에 기준에 남성 작가 쓴 책도 있지만, 여성 작가가 쓴 여성 서사 책이 책방에 모두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 작가의 책을 우선적으로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필자가 쓴 엑셀 참고서의 경우는 어떠할까. 아무래도 참고서의 성격이 강한 책이다 보니 ‘여성의 서사가 고전이 되는’ 책방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친구는 이런 식의 구성이라면 어떨지 물었다. ‘여성 실무자를 위한 엑셀 참고서’. 엑셀을 이용하는데 있어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관련 수식어가 붙는 게 어색하다. 만약 작가가 컴퓨터 선생님으로 일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겪은 일에 관해 언급하는 대목이 있는 책이라면 좀 나을 것 같다. 제목은 ‘컴퓨터 잘 하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정도가 어떨까.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를 다루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여성들을 위한 책이라면 말이다.
서점을 운영하기 전에 컨셉을 잡는다면 내가 지금 가장 관심 있고, 나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정할 수없이 페미니즘이 그것이었다. 페미니즘 책방이라고 하면, 개인마다 다른 페미니즘에 대한 기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을 것 같아 가두리를 넓고 모호하게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도 오랫동안 가사와 업을 겸하면서 컴퓨터 선생님으로 살아온 친구의 어머니가 쓴 엑셀 실무서는 그 자체만으로 페미니즘을 증명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 일과 가정을 함께 꾸리는 여성은 모두 위대하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나의 작은 책방에 한정된 공간이 안타까울 뿐이다. 허전해 보이던 책방이 어느 날 가득해 생경하다. 물론 다른 책방에 비하면 아직 책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아니 아주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오래도록 여성 서사와 여성 작가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특히 2020년의 어느 날처럼 여성의 피해보다 남성의 서사가 부각되는 날이면 더 서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