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참가한 첫 북페어
작년에 열렸어야 할 북페어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밀리고, 코로나로 밀리고, 밀리고 2020.07이 되어 열렸다. 작년 참가신청을 했을 때만 해도 독립출판 작가로 참가 신청을 했다. 부지런히 책을 만들어 제주로 춘천으로 서울로 북페어를 나갔다. 인천도 나가보자고 친구들을 꼬드겼는데, 우리의 상황은 그새 많이 바뀌었다. 여행하다 진짜진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a는 도서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고, 자존감 지키기 프로젝트로 워크북을 만든 b는 취업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일년 사이 난 책방 주인으로 자랐다. 내 이름 다음에 사장님이 붙는 게 어색한 사장이 되었다. 그 결과 날짜가 밀린 북페어에 처음으로 책방이름을 걸고 셀러로 나와 있다. 내 앞에 손님이 책을 보고 있다. 타이핑을 하다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했다. 이번 북페어에는 내가 제작한 책은 하나도 들고 나오지 않았고, 친구가 디자인해 준 책방 굿즈 메모지만 선보이기로 했다.
작가로 참여하다가, 책방을 차려서 다른 사람의 책을 팔고 있으니 이전 북페어보다 마음이 편하다. 내 책을 테이블에 놓고 지나가는 손님들의 걸음 속도와 멈춰 섰을 때의 동작을 살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동요가 없다. 내가 쓰고 만든 책을 팔 때에는 손님이 책을 든 순간부터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손님의 눈치를 봤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책을 내려놓고 손님이 가던 길을 가면 긴장이 풀리면서 온갖 생각이 든다. 그러다 또 다른 손님이 와 책을 집으면 그때부터 다시 두근거리다가 온갖 생각이 들다가...
싱어롱페이퍼에 자리를 지키는 지금 몇 명의 손님이 부스를 지나쳐갔다. 내 앞에 멋진 손 타투를 한 손님이 봄알람의 <꿈을 그리는 여자들>을 보다가 내려 놓고 옆 부스로 넘어갔다. 그래도 내 마음은 평온한데, 이게 맞는 걸까? 책방 주인이라면 여전하게 마음이 동요해야 하는 건가. 이래도 되나 싶다.
동요는 북페어와 먼 곳에서 일어났다. 잠시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북페어에 와서 별 소득 없이 돌아가도 이 여정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기 위해 셀러임에도 공연 관람을 신청했다. 북페어에 함께 온 친구와 나는 같은 공연을 신청해서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워야 했다. 우리는 별 고민없이 공연을 택했다. 친구는 공연하는 사람을 아예 몰랐고, 나는 꼭 듣고 싶은 노래가 두 곡 있었다. 공연하는 사람은 이랑이다. 이랑님의 노래 중에 ‘우리들의 방’과 ‘너의 리듬’을 듣고 싶었는데, 첫 곡이 ‘우리들의 방’이었다. 그리고 공연 중반쯤 이랑님은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었다. 아직 ‘너의 리듬’을 부르지 않아서 ‘너의..’까지 입 안에 머금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랑님의 팬인 것 같은 사람이 ‘너의 리듬!’하고 외쳐주었다. 다른 곡들도 관객석에서 외쳤지만, ‘너의 리듬’만 이랑님이 미리 짜온 세트 리스트에 있어서 들을 수 있었다. 라이브가 훨씬 좋았다. 너의 리듬 리듬 리듬 리듬.. 아주 살짝 눈물이 고인 건 두 곡이 아닌 다른 곡에서였다. 그 노래들을 재생 목록에 담아 오래오래 듣기로 했다. 이랑 님의 팬이 되었다.
공연을 보고 돌아오니 우리 부스 앞에 책을 보는 사람이, 메모지를 구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2층이라 1층보다 북적거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경하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너무 북적거리지 않아 좋다. 여전히 내 책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건가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이런 생각을 멈춰줄 화덕만두를 아는 작가님께 받았다. 이 글은 실시간이다. 처음 먹어보는 화덕만두는 찹쌀이 들어간 듯한 얇은 빵 같은 만두피에 튼실한 속으로 차 있다. 든든하다. 옆 부스 셀러 분과 자연스럽게 빈츠와 참 크래커를 교환했다. 함께 온 친구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럴 수는 없다. 바로 옆이 차이나타운이다.
소화를 시킬 겸 북페어를 한 바퀴 돌았다. 작년 북페어와 또 다른 점은 책을 파는 작가님들 중 우리 책방에 책을 입고해 주신 작가님이 계신다는 점이다. 책방에 책을 입고한 작가님들과 입고하고 싶은 책을 팔고 계시는 작가님들께 떡을 돌리듯 떡메모지를 드리며 인사를 드렸다. 드릴 게 있어 좋다. 너무 배부르지도 않은 선물이라 더 좋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의 일정이 버거웠는데, 정오의 공연과 화덕만두, 구경하는 손님들로 뭉친 어깨가 좀 가벼워졌다. 이제 북페어 마감까지 세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가지고 갈 짐이 더 줄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