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5
4번째 퇴사 면담을 마쳤다. 이번 면담은 퇴사보다는 인수인계와 관련한 면담이라 예상해 큰 부담 없이 회의실에 들어갔다. 다음 주에 면접을 볼 사람에 대해서, 내가 진행하던 업무에 대한 정리라던가 그런 형식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팀장님에게 나의 책방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알고는 계시지만, 회사에서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책방이라는 소재로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다. 다른 부서 팀장님이 주말에 뭘 했냐는 스몰토크를 걸어오면 그냥 집에만 있었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입사 초기에는 투잡을 하는 데 있어 당당하지 못한 점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아무도 뭐라 하진 않았지만 원칙상 이 회사는 겸업 금지인 곳이라 도서를 다루는 회사에서 서점을 겸하고 있다는 점이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 급하게 입사제의를 받아 서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정을 먼저 말씀드린 케이스다. 그렇지만, 직원 분들이 어느 정도까지 아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알고 있어서 햇병아리인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었다. 첫 단추를 이렇게 끼우다 보니 그 이후에도 입사 전부터 대학 동기인 친구를 제외하고는 회사에서 책방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야 마음 편하게 책방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최근에 이사 간 이유가 회사와의 거리도 있지만 사실은 책방 2층 집이라 이사했다는 것. 책방에 손님이 많지 않은데, 당분간 작업실처럼 생각하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재미있게 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고 했고, 내가 그런 일을 이미 하고 있었으니 응원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팀장님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부러운 이름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엄마나 이모들과 비슷한 나이 대라 당연히 결혼을 하셨을 거란 예상을 깬, 닮고 싶은 여성이기도 하다. 그분께 응원의 말을 들어 다행이다.
이곳에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서점을 한다고 하니 회사를 소개해 준 교수님은 나에게 서점 해서 돈이나 벌겠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책도 내는 시인이시면서, 물론 애정이 담긴 걱정일 수 있겠지만 그 행간을 내가 굳이 찾아 읽어야 할까. 교수님께도 이 소식을 알렸다. 입사 때 퇴사하기 3개월 전 회사보다 자신에게 먼저 퇴사 소식을 알려달라고 한 교수님이다. 암만 생각해도 3개월 전에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직장인은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보통 직장인들처럼 퇴사를 결심하고 한 달을 더 일하기로 했다. 교수님께는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각오하고 메일로 구구절절 나의 결단을 전했다. 교수님은 의외로 하고 싶은 일은 해야 되지 않겠냐며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쓴소리를 듣지 않으니 서운할 지경이었다. 결국 한 번 붙잡기는 하셨지만, 그렇게 팀장님과의 면담 2번, 교수님과의 면담 2번으로 긴 퇴사 면담이 이어졌다. 이제는 남은 연차를 알뜰하게 써 버려서 무를 수도 없다. 회사의 연봉협상 시즌이 4-6월이라 사회초년생에게는 적당한 연봉 인상률이 주어졌지만, 대체공휴일이 생긴다고도 하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사업을 회사에서 진행한다고도 하지만 아무것도 아쉽지 않다. 이곳이 나의 마지막 조직이기를. 그럴 만한 원동력과 여유가 나에게 주어지기를. 그리고 아무도 이런 나를 동정하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