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진 Jun 20. 2021

직장을 다니며 얻은 소중한 한 가지

20210620

  어젯밤 서점에서 할 일을 꼽아 보았다. 이번 주는 배송시킨 도서도 없고, 도서관에 들릴 일도, 정산을 해야 할 일도 없다. 딱 한 가지.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를 완독하기. 이 계획을 품고 잠에 들었다. 소설 한 권을 단숨에 읽은 적이 언제였더라. 요즘의 독서 방식은 여러 권의 책을 여러 군데 두고 보이면 읽는 식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대출을 연장해가며 겨우겨우 읽는다. 그렇다고 책은 음식처럼 상하지 않으니까, 다 읽고 나면 참 괜찮은 책이라고 배를 통통 두드린다. 딱히 서점이 바쁘지 않기도 했고, 전날 밤 완독을 하자는 결심도 했지만 내 손을 붙잡고 '작가의 말'까지 달려가 준 건 온전히 스토리의 힘. 그리고 나의 경험 한 숟가락이 더 해졌다.

  책을 읽다가 표지를 보는데 표지도 참 괜찮다. 이미 커피를 다 마셔 빈 플라스틱만 남은 일회용 컵. 칫솔과 치약. 덕지덕지 붙은 메모지와 간식.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을 때만 해도 장류진 작가가 IT계열 회사를 다녔다고 해서 개발자인 줄 알았으나 나와 같은 웹 서비스 기획자라는 것을 이번에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웹 서비스를 기획하게 될 줄도 모르고 입사한 케이스라 주니어 중에 주니어다. 그렇다고 이 경험을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 경제적인 것과 사람을 얻게 된 두 가지 큰 갈래의 이득에 더해진 한 가지.


  직장 생활을 토대로 한 소설을 굉장히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는 것!

  일단, 화자인 다해가 마론제과에 입사한 사고의 흐름은 밑줄을 치고 싶을 만큼 공감이 되었다.


"나를 인턴으로 써주고 있는 이 회사, 마론제과가 알고 보면 내가 다닐 수 있는 가장 좋은 회사가 아닐까?"


  작가님, 언제부터 저를 내려다보고 계셨죠? 박사라 불리는 빅데이터 전문가, 시간이 2배쯤 빠르게 흐르는 점심시간, 코인 정보를 흘리는 동료. 직장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소재들과 실제 코인명.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현실 세계의 이름을 많이 가져왔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상환 문자에서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에필로그에서는 친절하게 소설에 쓰이도록 응해준 지인과 허구의 배경을 나누어 설명해두었다.


  <달까지 가지>는 To the Moon. 내가 가진 코인이 달까지 상승하도록 하자는 코인계의 은어다. 최근 코인 시장은 하락장을 맞고 있다. 딱 그 시점 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중 절반이 코인을 시작했다고 하고 꽤 괜찮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했다. 주식을 비슷한 시점에 시작해서 작년 연말에 신나게 주식 이야기했던 회사 동료도 코인을 한다고 했다. 아, 주식만으로 벅찬데 나만 빼고 코인하는 기분. 그때 업비트를 처음 깔았다. 사실 비트코인이 코인의 한 종류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코인은 쳐다도 보지 않을 거라 했던 내가, 코인에 관심을 가졌던 그 시점이야말로 꼭지가 맞았다. 업비트의 코인장은 시시각각으로 숫자가 변했고 그건 왠지 내가 들여다보는 증권사 어플과는 체감 속도부터 달랐다. 하루 동안 개장과 폐장 시간이 없다는 것도 분명 피로할 것 같아서 어플을 지웠다. 그리고는 다시 깔고 지우기를 반복. 그러는 동안 코인은 하락장이 왔다. 지금도 하락일 때 사야 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일단 손을 묶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내가 몰입해 읽은 건 조금 아는 코인 정보와 내가 하고 있는 투자 '주식'에 대입해 읽었다.

  

내 주변에는 지송이 같은 동료도, 은상 언니 같은 동료도 모두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다해인가?


"언니가 내민 그래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니, 돌이켜보니 나도 언니의 말을 듣고 주식을 시작했다. 그 언니는 팟캐스트 언니인데 똑똑한 언니들이 나오는 팟캐스트에서 그 언니들 조차 언니라 부르는 더 똑똑한 언니가 나오는 날이었다. 한창 작년 삼성전자가 7만 전자를 바라보고 있던 때, 더똑언니는 자신의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삼전을 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때가 마침 주식이 흐른다는 '네마녀의 날'이었고, 흐른 시점에 삼전을 사려고 했다. 결국 6만 전자에 사서 9만 전자를 맛보고 돈이 필요해 8만 원대에 매도한 기억이 난다.


  퇴사를 결심하고 우스갯소리로 "9시부터 3시 반까지 한국 주식하고, 4시부터 9시까지 책방 열고 10시 반부터 자기 전까지 미국장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는 했는데 진심이기도 하다. 주식에 진심이다. 은상 언니가 코인에 진심인 것처럼. 주식에 발을 담가 보니, 이건 불로소득이 아니다. 은상 언니처럼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수집하고 목표가를 설정해 동료까지 챙겨가며 장군님!을 외치는 것. 난 여기에 '정보를 수집한다.' 정도를 행하고 있다.


"알아. 나도 알고 있었어. 위험한 거 다 알면서도 모험해본 거야. 잘 안 됐어도 언니 탓할 생각은 없었어."

위험은 우려, 모험은 무릅쓰는 것.


  이 대목에서 조금 눈시울을 붉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은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누군가 번 돈은 누군가 잃게 되어 있다. 지금 당장 내 주식 계좌만 보아도... 회사는 따박따박 정해진 수익률을 보장한다. 그런 안정성은 다양성을 담보로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게 만든다. 퇴사 시즌에 <달까지 가자>를 읽은 것은 행운이라고, 나에게도 p298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부적처럼 카메라로 책 한 페이지를 찍어 두었다. 무슨 말이지 궁금하다면 책을 사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달까지 가요!



작가의 이전글 퇴사 면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