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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Jan 20. 2017

무간도(2002)

영웅 없이 무간 지옥으로 향하는 서사

  영화는 무간 지옥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의 결말을 미루어 봤을 때, 무간 지옥이란 영웅은 없고 악인만이 남은 세상이다. 영웅의 위대함 뒤에는 수많은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 영화에는 영웅은 없고 희생만이 존재한다. 희생으로 남은 이는 왜 영웅이 아닌 악인일까? 개인의 희생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인 것일까?

  진영인과 유건명 두 주인공은 각자 첩자 생활을 하며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중 건달이 되어 죽음으로 끝난 진영인의 삶은 비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첩자로써 살아온 그에게 경찰이 되는 방법은 죽음뿐이었을 것이다. 이는 뒤바뀐 자리가 만든 정해진 운명의 결과이며, 현생에 남은 유건명의 삶이 행복하지 않을 것을 암시하듯 죽음으로 끝난 진영인의 삶이 비극만은 아니라는 아이러니함이 참 흥미로웠다. 

  이 둘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담당했다면 서로의 삶을 살았을 수 있다. 앞서 던진 개인의 희생이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닐 수 있으며,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 속에서 존재할 때 유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유건명이 경찰의 삶을 택한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과 어울린다. 조직의 일원과 홍콩 경찰로서의 이중생활에서 홍콩 경찰을 택한 것은 단순히 그의 내적인 변화가 아닌 외부의 역할 또한 큰 작용을 한 것이다.  


  진영인의 희생 전에 다른 이의 희생 또한 발생했다. 즉, 이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힘은 누군가의 희생이다. 황국장의 죽음을 시작으로 진영인의 죽음까지 계속되는 총격전의 생존자는 유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영웅담이 아니다.


황국장의 죽음과 이를 바라보는 진영인


 첫 번째 희생은 유일하게 진영인의 첩보 생활을 알면서 진영인의 뒤를 봐준 황국장의 죽음이다. 황국장의 죽음이 큰 사건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앞으로 진영인의 신분을 보장해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과 더불어 진영인에게는 아버지와 같이 믿고 의지했던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 슬픔이 더욱 크다. 

  황국장의 죽음을 시작으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라 생각했던 아강의 죽음 또한 진영인에게 있어 큰 충격을 안겨준다. 자신이 첩보임을 알아챘음에도 한침에게 알리지 않고 죽은 아강의 죽음은 황국장의 죽음과 함께 진영인에게 더욱 첩보 생활의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여기까지가 진영인을 위한 두 명의 인물의 희생적인 죽음이고, 그 다음은 한침의 죽음이다. 한침은 유건명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유건명은 한침을 죽이면서 한침이 ‘선택’했다고 말한다. 유건명은 좋은 사람이 되기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한침을 죽인 것이다.      

 

진영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유건명

  마지막으로 진영인은 유건명과 함께 들어온 첩자에 의해 죽게 된다. 계속된 희생의 서사가 유건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청년 시절 유건명은 떠나는 진영인을 보며 경찰학교를 나가고 싶어 했다. 이는 한침의 명령에 의해 경찰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 생활을 하며 더 이상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린 선택으로 유건명은 경찰로 남는다. 경찰로 남았으나 황국장과 진영인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얻은 결과는 유건명이 진정한 경찰이 결국 되지 못함을 암시한다. 진영인은 죽음으로써 경찰의 명예를 얻게 되지만, 유건명은 경찰로 삶에도 끊임없이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희생의 서사는 영웅을 위한 희생이 아닌 희생한 사람들 그 자체가 영웅이 되는 서사의 결말을 보여주고, 진정한 무간 지옥의 형벌은 유건명에게 내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던진 의문점인 ‘무간 지옥이라는 영원한 고통에 빠지는 이는 누구인가?’ 에 대한 해답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둘 중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선택의 답이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을 놓고 쉽게 좋고 나쁘고를 가리기는 힘들다. 착한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면 그는 어떤 심판을 받아야하는가? 결국 살아남은 유건명은 나쁜 짓을 했으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침을 죽였다. 하지만 그에게 해피 엔딩을 주기에는 진영인의 삶이 가련하다. 때문에 결국 죽은 이들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갈 유건명의 현실이 무간 지옥이며 앞서 던진 의문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 영웅의 비장미가 아닌 평범한 삶을 원해는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결말은 죽음을 통한 희생 혹은 비겁함으로 현실에 남는 것이다.  

  이렇듯 홍콩 누아르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한 <무간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개척했다.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있지만, 원작을 완벽히 뛰어 넘은 작품은 없다. <무간도>는 서로의 의도를 숨기고 살아온 두 주인공의 삶을 대조적으로 드러내 효과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도왔으며, 자신에 역할에 충실한 조연들 역시 서사에 전개에 있어 관객이 끝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세련된 작품이다. 또한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은 조직의 지시에 따른 결과이나, 둘의 삶의 결과가 달라진 이유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끝까지 희생한 진영인과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리를 포기하지 못한 유건명의 삶은 우리에게 선악의 모호성과 그럼에도 선택하고 책임져야한다는 의무가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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