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책방 9
맛집 검색만 열심히 했다. 두 달 동안 새로운 곳에서 혼자 살아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컨셉을 가지고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던 때였다. 평소 동네 서점을 다니는 걸 좋아해서 사는 곳 근처에 서점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라이킷>이 걸어갈 거리에 있었고, 제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곳에 방문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이곳에 서점이 있을지, 낯선 칠성로 거리를 찾아 걷다보면 라이킷의 입간판이 보인다. 서점에 들어가면 향기가 난다. 그 향기가 주는 이미지가 좋다.
'제주에도 이런 서점이 있구나.' 책을 둘러보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은연 중에 내가 좋아하는 동네 서점들은 모두 서울에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경기도 촌사람이다보니 약속을 잡아도 서울로 잡고, 한 시간 거리는 아주 감사한 정도였다. 그런데 라이킷에 다녀온 뒤로 지방의 동네 서점에 관심이 생겼다. 소규모 출판물을 다루는 동네 서점들이 지방에도 속속히 생기고 있었고, 이미 자리를 잡은지가 오래된 중형 서점들도 그 가치가 매우 중요해보였다. 내가 서점을 차린다면, 한 가지 꼭 지키고자 하는 건 '서울' 이외의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먼지로 콧구멍이 막히는 지역에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했었다. 그 말은 서울에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서울에 가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먼지가 많아져서 이제는 어딜가도 콧구멍이 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래도 서울이 문화의 중심이고, 먼지도 더 많다. 정말 기이하게도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꼭 서울로 가지 않아도 지역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제주에 살면서 크게 들었다.
제주에서는 주로 혼자 다닐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관광지를 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바다를 보고 카페를 가는 게 주 코스였다. 휴양림도 혼자 가기에는 버거운 편에 속했다. 서점은 혼자 다니는 여행에 코스로 적합했다. 대부분 제주 서점 근처에는 바다가 있었고, 갈만한 카페나 식당이 있다. 라이킷 근처에도 역시 탑동 방파제가 있고 유명한 곳으로는 우진 해장국, 김만복 김밥, 쌀다방 같은 곳이 있다.
한켠에는 헌책을 파는 공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다른 손님이 이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손님이 자리에 일어나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볼까, 하다 말았다. 라이킷이나 미래 책방은 딱히 음료나 음식 팔지 않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구입한 책을 읽고 나오기에 좋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서점이 좋다. 쉬면서 드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정리해보기 좋은 분위기를 담고 싶다.
이곳에서 산 브로드컬리의 서점 인터뷰를 담은 잡지를 읽으며 서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책을 더 많이 사야지, 보다는 책을 팔아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지만 자신이 없었던 탓에 감춰왔던 것 같다. 이미 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제주 서점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제주의 서점들은 제주와 관련된 책들과 문구들을 배치해놓기 때문에, 제주의 분위기를 느끼기 참 좋다는 것이다. 바다를 가고 오름을 가는 것도 제주를 느끼는 방법이지만, 제주의 서점에 들러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제주와 관련된 책을 구입해 육지로 들고 가는 것도 좋은 여행의 한 방법이다. 제주도에서 갈 만한 맛집과 카페도 많지만 갈 만한 서점도 많다. 그리고 일부러 그 곳을 들려보기를 권한다. 아마 새로운 제주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