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맛집탐방 1 - 프루스트의 서재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하는) 헌책방 이야기
신금호역, 5호선
역도 낯설고 호선도 낯선 이 곳. 가고 싶은 책방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찾아온 동네다. 이 동네에는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 곳의 책방이 있다. 하나는 작년 연말에 오픈한 카모메 그림책방(2018.02 기준 카카오맵에도 뜨지 않는 따끈따끈한 책방) 또 한 서점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던 프루스트의 서재다. 오늘은 이번 달 주제로 잡은 <헌책맛집탐방>에 걸맞은 프루스트의 서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다음에 꼭 카모메 그림책방 이야기도 다뤄보겠다. 참고로 카모메 그림책방은 내가 염두해두고 있었던 타로와 책의 조합으로 운영하고 있는 책방이다. 또 그림책을 주제로 하고 있어 더욱 독특한 책방이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서점을 들어가기도 전에 반겨주는 이가 있다. 자칫 내가 문을 여는 순간 고양이가 나와버릴까봐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행히도 서점 주인분께서 고양이를 안쪽으로 들여보내주셨다. '나만 이런 간택을 받았나?' 두근거림을 받았지만 책방에 있는 동안 문 앞에 카페트와 작은 상자(?)처럼 보이는 두 공간이 고양이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애교가 많은 이 고양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검은 고양이 '지지'를 닮았다. 가끔 이렇게 고양이와 함께 운영하는 서점들을 만나면 반갑다. 고양이를 키워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만 키우지 못하는 사정 때문에 더욱 반갑고 어쩔 줄 모르겠다.
고양이에게 뺏긴 시선을 책 한 권 한 권으로 돌리려는데 눈길을 끄는 책이 정말 많았다. 보통 이 정도 크기의 공간을 가진 서점은 두 분류로 나뉘어진다. 책이 많아 어떤 책을 살지 고르기 힘든 책방과 아직은 책의 규모가 크지 않아 신중하게 큐레이션을 했다는 느낌이 드는 책방이 있다. 프루스트의 서재는 신중하게 고른 책이 많은 책방이었다.
프루스트의 서재는 작년 여름부터 가려고 마음 먹었던 책방이다. 그때만해도 잠시 동안 서울에 살아 프루스트 서재하고는 지하철로 몇 정거장 차이 나지 않는 곳에 살았다. 그런 좋은 조건에서는 서점에 가는 것을 미루다가 이제야 방문한 게 참 아쉽다. 마음에 쏙 드는 분위기에 책방을 만나면 이곳이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서점보다는 북카페에 성향이 강한 제주도의 유람위드북스가 그랬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책 권 수는 적지만 항상 사고 싶은 책이 많았던 제주 구도심의 미래책방, 멋 모르고 갔던 홍대의 유어마인드(지금은 연희로 이사)가 그랬다. 잠시 서울에 살 때, 잠시 회사에 다녔다. 다녔다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학교현장실습으로 두 달 간 다닌 회사였다. 그곳에서 서점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했는데 한창 서점을 향한 애정이 솟구쳤던 때라 어떤 서점에 가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점을 소개하려고 했다. 콘텐츠 제작을 위해 방문 하는 겸 나 역시 새로운 서점을 방문하려는 '꿩 먹고 알 먹고' 작전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서점이 몇 곳 있었다. 그보다 서점에 가서 콘텐츠에 실릴 사진을 찍고 소개할 특별한 점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제대로 서점을 즐기지 못했던 탓이 크다. 그럼에도 분명 '책을 온전히 살펴볼 수 있는 편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건 책방의 큰 덕목이다. 프루스트의 서재가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건 취향을 저격하는 책 구성, 나를 놀래키는 개냥이도 있지만 거기에 더해 '건강한 소통'이 큰 몫을 하는 듯 하다.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고 있을 때, 다른 손님이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작은 책방 안에 들리는 대화로 미루어 보아 단순히 방문한 손님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분은 독립 서적을 제작하는 작가님인 듯 했다. 책 입고를 위해 방문한 것 처럼 보였고 책방 사장님은 그 분에게 드릴 차를 권유하며 나에게도 차 한 잔을 건냈다.
그동안 비단 서점 뿐 아니라 작은 규모의 카페, 식당 등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요즘 SNS(콕 찝어 인스타그램)에 유행하는 작은 가게들은 가게 주인과 다른 손님(단골 혹은 지인?)과의 과도한 친목에서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동네 주민과의 소통에서 비롯된 친목이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분위기에 소외되어 불편한 공기를 느끼는 손님 또한 있을 것이다. 자칫 이미 안면이 있는 작가와 책방 지기 사이에서 '빨리 이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뻔 했지만, 차가 우러나고 그 한 잔을 다 마시는 동안 책을 편하게 구경하고 또 구입할 수 있었다. 별 생각없이 차 한 잔을 더 내어 주신 것일 수 있겠지만, 생각이 많은 손님에게 찻 잎 한 장은 큰 배려로 다가온다.
프루스트의 서재에 들어서면 헌책이 먼저 반겨줄 줄 알았는데, 헌책은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에 쌓여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헌책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이 고양이가 또 나를 따라와 책 옆에 딱 자리를 잡았다. 마치 자신이 그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말이다. 아쉽게도 그 날은 먼저 본 새책들에 홀려 헌책을 깊게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헌책이 있는 아늑한 공간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사고 싶은 헌책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나 더 핑계를 대자면 자꾸만 내 발과 다리에 자신의 몸을 비비는 이 작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루스트의 서재를 여름부터 오고 싶었던 건 단지 그 근처에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당시 예비 서점 창업자들을 위한 워크샵을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헌책을 다루는 프루스트의 서재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만해도 헌책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헌책 매입 시뮬레이션을 경험했는데, 헌책에 가격을 매겨보는 것이었다. 가격을 매겨봐야 할 책은 과월호 잡지와 이미 베스트 셀러가 된 책 등이 있었다. 딱 보기에 별로 매입하고 싶은 메리트가 없었지만 우선 가격을 매겼다. 나처럼 모두 자신이 생각한 기준에 미치는 가격을 제시했으나, 답은 0원 즉 '매입하지 않는다'였다. 그 워크샵을 통해서 얻은 교훈은 헌책방을 운영하려면 책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 책을 파는 입장에서도 같은 이치지만 그 맥락이 조금 다르다. 헌 책은 새 책과 달리 가격도 책방지기의 몫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책을 골라야 한다. 보물이 될 책인지, 천덕꾸러기가 될 책인지 판단하는 건 오로지 책방지기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수업을 듣고 막연하게 헌책을 파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동경이 생겼다. 그리고 내게 헌책은 더 어려운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헌책에 관심이 생긴 건 희한하게도 매입하지 말라던 그 '과월호 잡지'를 만나고서였다.
파란색 컨테이너 안에 있는 서점 인덱스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여러 과월호 잡지에 담긴 독특한 감성에 꽂혔다. 특히 영화 잡지나 이름 부터 멋있는 월간 <멋> 등 지금의 톱스타가 과거의 라이징스타로 소개되는 식의 이색적인 기사들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 내가 태어난 년도에 발행된 잡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젠가 마음 먹고 이 과월호 잡지를 찾아 돌아다니기로 다짐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마음에 든 헌책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그 때의 감성이 담긴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헌책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은 이유는 다시 그 곳에 방문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제는 거리도 그리 가깝지 않지만, 자주 가고 싶은 서점이다. 다시 가면 또 어떤 책을 만날지 기대가 되는 서점,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하는 서점이 더 늘어나길 바란다.
카모메 그림책방 위치: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