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그리고 책방 - 오프투얼론, 더북소사이어티
궁궐 근처에 있는 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옛 시대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궁 안에 들어서면 어딘지 모르게 벅찬 느낌에 사로잡힌다. 토요일, 아르바이트를 마치는 시간이 오후 3시라 바로 집에 가기 아쉬워 갈 만한 서점을 찾아보았다. 지도를 보니 걸어서 30분 거리에 경희궁이 있고, 거기서 또 30분을 걸으면 오프투얼론를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되지만 날이 막 풀린 3월 3일 낮 3시의 날씨는 아침에 여미고 온 코트를 벗은 채 걷고 싶은 날씨였다. 지도에서 알려 준 가장 최단거리를 따라 걷는데 예기치 못하게 가파른 언덕길이 나오고 좁은 주택 사이를 걸어야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코트가 버겹게 느껴져 아무 땅에나 버리고 싶어질 때쯤 경희궁을 만났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경복궁은 수 차례 갔었고 창경궁은 야간개장으로 갔었다. 덕수궁은 안을 둘러보지는 않아도 그 주변 길을 몇 번 걸었던 것 같고 창덕궁은 경복궁과 창경궁을 가면서 갔던 것 같다. 희미하지만 어느 정도 기억이 있는 다른 궁궐과는 달리 경희궁은 꽤 생소했다. 아무래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궁에 도착하니 나처럼 콧바람을 쐬고 싶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주말 치고 한적한 편이라 혼자 돌아다니기 좋았다. 홀로 궁궐 안을 걷고 있으니 구름이 눈에 가장 많이 밟혔다. 멍 때리기 딱 좋은 봄이다. 경희궁 산책은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보니 조금 지치기도 하여 금방 둘러보고 나온 탓이다. 다음은 오프투얼론에 갈 차례다.
오프투얼론은 통인시장 안 쪽 골목에 위치해있다. 시장으로 들어가야 나온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잠시 해맸다. 통인시장은 고등학생 때 처음 친구와 갔다. 언덕길을 지나 높은 빌딩이 있는 큰 대로변을 걷다보니, 시장이 나왔다. 시장에 가기도 전에 줄 지어 있는 가게를 보고 이곳이 통인시장 근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효자베이커리'다. 친구와 통인시장에서 기름 떡볶이를 먹고 양이 차지 않아 별 생각 없이 그 빵집에 들어갔었다. 평일이었던지,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갔다. 게다가 가게 안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줄 서서 먹는 빵집인지도 모른 채 멀뚱거리고 있으니 가게 직원분께서 먼저 시식을 권유하셨다. 이 빵 저 빵 먹다보니,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콘브레드가 가장 맛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친구와 콘브레드 하나를 사서 아무 벤치에 앉아 먹는데 실수로 빵 조각을 떨어뜨렸다. 빵이 떨어지자마자 웬 비둘기가 와서는 빵을 낚아챘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낚아챈 빵을 보고 호다닥 쫓아 온 다른 비둘기들을 따돌리며 혼자서 빵을 먹으려는 새를 보며 어이없게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있다.
콘브레드는 정말 맛있었지만, 그 줄을 서고 싶지는 않아 그냥 지나치고 서점으로 향했다. 오프투얼론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이 있었다. 아이와 아빠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로 보이는 분은 책을 유심히 살펴보며 '이런 곳이 있네'하며 혼잣말을 했다. 아마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분은 이 서점에 또 올 것만 같았다. 오프투얼론은 외관부터 나무 질감이 돋보이는 예스러운 정취가 있는 서점이다. 하지만 의외로 안에 들어서면 들썩이고 싶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북적이는 시장을 지나다 서점에 들어오면 차분한 마음이 든다. 이번에는 사고 싶은 책이 있어 서점을 들렸는데, 아쉽게도 그 책은 없었다. 대신 전부터 눈에 밟힌 '달밤책장'(지혜문고, 우세계)을 구매할 수 있었다.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엽서와 포스터가 가득한 그곳은 다채로움이 가득한 시장에 충분히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오프투얼론에서 나와 책방 사장님께 추천받은 카페로 가는 길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왠지 이 근처에 분명 더북소사이어티가 있을텐데. 앞선 서점에서 못 산 책이 이곳에는 있지 않을까 발걸음을 옮겼다. 더북소사이어티는 이번이 3번째 방문이다. 우연치 않게 1년에 한 번씩 이곳에 들렸고 그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예술 서적을 취급해서인지 갈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책을 발견하는 책방이지만, 아쉽게도 내가 찾는 책은 없었다. 인터넷 서점에서도 살 수 있는 책이라 두 책방 모두 구비해두지 않은걸까? 아니면 1월에 나온 신간이라서? 책방과 관련된 책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가끔 이렇게 아쉬움이 남을 때면 오기로라도 인터넷이 아닌 오프라인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고 싶어진다. 더북소사이어티에서는 따로 책을 구매하지 않고 예전과 바뀐 책장을 살펴보고 도로 나왔다.
전에 대학 선배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로 잡지를 낸 적이 있다. 학교에 지원을 받아 낸 잡지로 아쉽게도 창간호에서 그쳤지만, 당시 1학년을 막 마친 나에게는 꽤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내가 맡은 원고는 이제 막 창간호를 낸 잡지를 소개하는 코너였다. 어떤 잡지를 소개할지, 더북소사이어티에서 여러 잡지를 보다 인터뷰를 다룬 잡지라는 공통점을 가진 '모노그래프'와 '요지경'를 골랐다. 잡지라고 하면 '쎄씨'나 '나일론', 가끔은 현재 폐간된 '크래커'를 보는 게 다였는데 인물의 인터뷰를 오롯이 담은 두 잡지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봐왔던 잡지에서는 표지 모델 인터뷰조차 몇 페이지 되지 않았는데, 두 잡지는 한 인물을 책 한 권에 담고 또 여러 인물의 인터뷰를 깊숙하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잡지라는 점에서 기존 에세이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서점에서 두 잡지의 다음 호를 볼 때마다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요지경 창간호가 박스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창간호지만 아직 누군가에게 돌아가길 기다리는 그 책이 부디 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몇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살 가치가 있는 그 잡지가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경희궁에서 다소 먼 경희궁 책방 나들이
사실, 두 책방과 함께 궁을 둘러본다면 경복궁을 끼고 산책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하지만 처음 가 본 궁궐과 서점, 또 예전에 와 본 서점을 걸어걸어 가보니 이 날 또한 언젠가 돌이켜 볼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걸었기 때문에 두 서점은 내 기억 속에 좀 더 선명하게 남았다. 걷는 동안 전에 이곳에 담긴 기억을 하나씩 돌이켜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나들이를 가려는 장소에 꼭 서점이 붙어 있지 않더라도, 같은 동네에 서점이 있다면 그곳을 가보는 건 어떨까? 기왕이면 산책에 걸맞게 걸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