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건네는 책방 - 미스터 버티고
학교 현장 수업이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진행되는 덕에 일산에 갔다. 일산도 처음이고 방송국도 처음이라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버스를 탔다. 이른 시간까지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드라마 리허설을 보고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밥도 먹고 이제 다들 학교로 돌아가는데, 다시 일산에 오기 힘들 것 같아 일산에 있는 서점으로 갔다. 새로운 동네에 가면 이 동네에는 어떤 서점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곳에 오면 꼭 가야하는 맛집을 찾듯이 서점을 찾는다. 서점을 가는 데 꼭 큰 마음을 품을 필요는 없다.
'버티고'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는 책방이다. 일산에 있는지는 가물가물했는데, 찾아보니 이곳에 있었다. 평소 처음 가는 서점을 찾아갈 때 카카오맵 어플로 길을 찾는데 서점이 있을 자리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를 겸한다고 해도 분명 미리 찾아봤을 때 간판까지 카페는 아니었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점이 한 순간에 없어지는 일을 눈 앞에서 보고 싶지 않았고 무엇이든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을 믿는 편이라 이 서점 만은 계속해서 버티고 있을 줄 알았다. 방송국에서부터 걸어와서 다리가 아팠다. 정류장에서 다시 검색을 해보았더니 가장 최근 게시물이 이전한 버티고 책방이야기였다. 다행이다. 검색을 해보니 5분 정도 더 걸어야했다. 다시 걸어야하지만 목적지가 사라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굳이 선호하는 책방을 고르자면 60평 서점보다는 30평 서점 30평 서점보다는 20평 서점이 좋다. 미스터 버티고는 20평 서점에서 60평 서점으로 확장 이전했다. 평일 2시 쯤 쇼핑센터에도 사람이 적어 한적한 이 공간이 주는 매력은 크지 않았다. 가고 싶은 책방이 있으니까 이곳까지 왔고, 여기서 만큼은 바람맞고 싶지 않았다. 혹시 또 헛걸음 하는 걸까 싶어 미스터 버티고에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찾아보았다. 원래 운영하던 책방이 운영난을 겪는 와중에 쇼핑센터에서 입점 제의를 건내 마지막 승부수로 이전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쇼핑센터에 들어간다면 원래 동네 책방이 갖는 색깔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테고, 그 점이 서점지기로서 가장 큰 고민일텐데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건 이전하기 전 미스터 버티고를 가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변했는지 그대로 그 분위기가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건 베스트 셀러 코너였고 늘어선 서가에 책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20평이었던 서점에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을 지는 모른다. 책이 많으니 사고 싶은 책이 많아졌다. 여느 서점에서 두 세권 정도의 책을 두고 고민했다면 버티고 책방에서는 그 가짓수를 훨씬 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고 싶은 책이 많으니 정말 사야만 하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줄줄 읊을 정도로 좋아했던 청소년 도서가 있다. '나쁜 어린이표'가 바로 그 책이다. 학교에서 운 좋게 '나쁜 어린이표'의 저자 황선미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전부터 동화에 관심이 조금씩 생겼는데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어른의 모습을 보니 더 깊게 좋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이 책을 집었다. '동화 쓰는 법'이라는 제목을 보고 얼른 집었다. 미스터 버티고는 소설이 많은 책방이다. 나라 별로 나누어도 가득할 만큼 소설이 많다. 어쩌면 이보다 작은 공간에 있었을 때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작은 책방에서는 소설과 함께 다른 장르의 책을 두다보면 금세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설이 더 많더라도 비슷해보였을 것이다. 책방지기와 적당의 거리도 좋았다. 책을 사서 편한 쇼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딴짓을 하다가 멍을 때려도 이 공간에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카페를 겸하다보니 이곳을 북카페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친절한 안내문을 모두가 잘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점에 왔을 때 옷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미팅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책에 둘러쌓여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오며가며 책의 표지라도 본다면 읽고 싶고 사고 싶어지는 책을 발견하지 않을까?
서가를 둘러보다 '책'이 적힌 포스터가 눈에 띄였다. 자세히 보니 서울국제도서전 홍보 포스터다. 꽤 빨리 돌아온 거 같아 작년을 생각해보니 정말 1년이 돌아왔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은 한 달 조금 넘게 남았고 그 때 쯤이면 종강을 맞는다.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작년에는 휴학을 하고 제주도에서 스텝으로 있다 돌아와서 바로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 서점을 차리고 싶고 그래서 서점을 찾아 다니기로 마음 먹은지 딱 1년이 지났다.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달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행복하기만 한 달은 아닌가 보다. 가끔 반복되는 원을 돌다가 변두리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평균이라고 맞춰놓은 기준에서 멀어지는 기분. 변두리로 빠져도 버티며 걷는다 중심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걸어서 더 힘들다. 출발점에서 다시 돌아오는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 모두가 행복한 5월은 그 거리감을 더 느끼게 하는 달인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게 맞는지, 계속 해도 되는 건지. 그 답은 결국 내 안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내가 그 답을 내주지 못한다면 책이 건네는 말을 들어보자. 책장 사이를 걷다보면 반드시 멈추게 된다. 몇 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하나의 단어로 한 문장으로 뽐내기 위해서 책은 책등에 혹은 표지에 가장 자신있는 말을 내 놓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티다보면 정해진 답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 버티고는 정말 이름을 잘 지은 책방이다. 이 책방이 버티지 못한다면 어떤 책방이 버티며 책을 팔까. 부디 오래오래 버텨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