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케냐라니
푸릇한 풀이 적당히 있는 카페테리아에 앉았다. 긴 비행과 연착으로 너무 피곤했다. 조식으로는 빵과 몇 가지 과일이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은 이미 차려져 있었고, 자리에 앉으니 웨이터가 음료를 주문받으러 왔다. 대충 설탕이 없는 블랙 커피를 주문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으면 재 차 물어보곤 한다.
"Black coffe? no sugar"
"No! No sugar please"
아프리카는 더운줄로만 알았는데 추웠다. 내 인생에 첫 아프리카였고, 첫 비즈니스 출장이었다. 고로 나는 복장이 잘 갖추어 지지 않은 상태였다. 컨퍼런스에서 입을 원피스 몇 벌과 잠옷, 대충 둘러입을 바람막이 정도만 가지고왔다. 편하게 입을 청바지 하나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비즈니스 출장 준비다. 폴로 테니스원피스에 바람막이를 입은 상태였고, 뜨거운 블랙커피로 몸을 녹이며 조식을 먹었다.
나는 사실 모잠비크에 가는 길이었다. 인천-태국-케냐-모잠비크로 향하는 여정이었는데, 태국에서 뒷 비행기가 차례로 캔슬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미 오바마 대통령이 케냐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케냐로서는 엄청난 영광이었을테니 활주로를 몇 개 비웠다고한다. 그러면서 항공노선 일부가 캔슬되었는데 그 캔슬이 나비효과를 불러와 꽤 시간차가 있었던 내 항공편까지 캔슬되었다. 아..첫 비즈니스 출장에, 혼자였다. 짐은 모두 카고로 들어가있는 상태.. 일단 한국인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았고 항공사에 엄청난 민원을 넣은 덕에 태국에서 1박 숙박을 지원받았다. 출장 짐이 상당했기 때문에, 짐을 모두 빼면 혼자 오도가도 못할 것 같아 그대로 두었고, 백팩에 있던 최소한의 생필품으로 1박을 보냈다. 이미 모잠비크에서 내 일정은 박살나 있었다. 제 날짜에 시작해야 하는 컨퍼런스는 내 도착 일정에 맞게 연기되거나 몇 개 일정은 취소되었다.
태국에서 1박 후, 다음 비행기를 타고 캐냐로 갔다. 케냐에 있어야 할, 이미 내가 탔어야 할 모잠비크행 비행기는 당연히 떠나고 없었다. 다음 비행기는 내일이나 되어야 있단다... 주여... 이렇게 1박을 또 날렸다. 늦은 시간이었고,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다. 케냐에서는 입국 비자가 없으니 입국이 안된다고했다. 한국인 선교사님과 또 다시 엄청난 민원을 넣었다. 당신들 항공사 캔슬 때문에 일정 망친것 보상부터 하라며, 소위 말하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식으로 싸웠다(진짜 싸웠다. 케냐 공항에서) 우여곡절끝에 $20 짜리 도착 비자를 발급받았고, 무사히(?) 케냐에 입국했다. 분노와 짜증이 밀려온 나머지, 룸 서비스로 맥주를 시켜 벌컥벌컥 들이키고 잠에 들었다. 그 와중에 현지 맥주 먹겠다고 코끼리 그림 있는 맥주 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미 2박이나 날려먹은 채로 허망하게 눈을 뜬 채 뜨거운 커피로 몸을 녹였다.
아직도 내 여권엔 뜬금없는 케냐 도착비자와 입국도장이 있다. 모잠비크도 대중적이지는 않은 나라인데, 나에게는 케냐가 더 충격이었다. 케냐에서 눈을 뜨다니.. 이건 계획에 없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