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소파에 앉는 기분이 새롭다!
두 회 방문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당분간 미뤄두고,
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로 상담을 8회기 받아보기로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미뤄둔 가장 큰 이유는,
마지막 진료가 저녁 18시인데, 아이를 보면서 도저히 방문하기 힘든 시간대여서..
남편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일찍 퇴근하는것도 눈치가 보이고
내가 진료를 가 있는 동안 남편이 두 아이 저녁육아를 하는게 쉽지 않아서이다.
다행히 올해 초 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를 받아둔게 있었고,
집 근처에서 2급 제공기관이 있는데 밤 9시까지 상담을 하셔서
아이들을 재우고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되었다.
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란,
기존에 '전국민 마음투자지원사업' 으로 알려진 심리상담 바우처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정신의료기간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자
국가 건강검진 중 PHQ-9결과에서 중간정도 이상의 우울이 확인된 자 등
몇 가지의 조건중 하나가 충족되면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자세한 사업소개는 아래 링크 참고)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6040800
나는 '국가 건강검진 중 PHQ-9 결과에서 중간정도 이상의 우울이 확인된 케이스였다.
건강검진 결과표를 첨부하여 복지로에서 신청가능하고
신청 후,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몇 가지 확인차 전화가 온다.
신청하면서 1급바우처로 할지, 2급바우처로할지 선택할 수 있는데
1급과 2급은 제공인력 (상담사) 의 조건이 다르다.
(뭐 1급은 임상심리전문가 이상의 자격, 2급은 임상심리사1급 이상의자격 이런식으로...잘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자부담금도 다른데, 어차피 천원 차이였던것 같아서 크게 고려할 문제는 아닌것 같다.
나는 2급으로 신청했는데,
그 이유는 집 근처에 주차편하고, 무엇보다도 늦게까지 상담을 하셔서
아이들 다 재워놓고 맘편하게 갈 수 있는 센터가 있는데 그곳이 2급 제공기관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바우처 판정과 기관선정을 모두 마치고 어제 처음으로 상담소에 갔다.
어느 상담센터나 그렇듯이, 따뜻한 조명과 아늑한 방, 그리고 편안한 소파가 있었다.
매번 상담사 쪽에만 앉아 있다가, 내담자 쪽에 앉아 초기정보를 작성하려니 새로웠다
책장에는 로샤, MMPI 등 각종 심리학 책이 가득했다.
즐겁게 전공공부를 했던게 떠올라 괜히 흐뭇했다.
첫 상담은, 왜 방문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로 시작하여
나의 어린시절을 탐색하고, 상담의 목표를 정하는 것으로 하였다.
보통 현재의 문제와 목표를 정하는데에 약 2회기 정도가 소요되는데
나는 내 마음의 어려움을 감지했을때부터, 원인을 찾고자 정말 많은 시간 사색을 했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서
어느정도 우울과 불안에 대한 실체에 접근한 상태였다.
상담사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명료화 하는 작업을 하셨는데,
말을 조리있게 잘 하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정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정리해주셨다.
8회기 상담의 목표는 아래의 목표들로 추려졌다.
각기 다른 단어로 쓰여있지만, 결국 추구하는 바는 같다.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늘 노력하지 않아도되.
그냥 나 자체로 살고, 평범하게 삶을 누리면 되'
평범한 사람 되기
평범함이 주는 자유함을 느끼기
어떤 자격증이나 스펙이 나를 설명하는게 아니라 나 자체로 살기
육아휴직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온전히 쉬기
첫 회기 상담에서, 내 우울과 불안의 원인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말씀하시기로, 나는 약간의 성취중독이 있는것 같다고 하셨다.
그 성취중독은 학창시절에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으로 나타났고
사회에서 나와서는 좋은 직장(남들이 알아주는)에 가는 것,
자격증을 따는 것, 높은 연봉으로 이직을 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이전 직장에 다닐 때, 나는 소위말하는 인싸였다.
그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서 10년을 재직했고, 작은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왠만한 회사 직원들이 나를 알았다.
늘 팀의 분위기를 주도했고, 어느 부서에 업무협조를 요청해도 진행이 원만했다.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는 늘 승승장구했으며,
나는 내가 원하는 포지션으로 발령받아 PM으로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내가 일(work)을 통제할 수 있고, 영향력을 발휘하는것에서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반면, 지금의 회사를 이직을 한 뒤에는 거대한 조직의 작은 구성원으로 왔고
연차를 인정받은 경력직으로 왔으나, 결국 이 조직에서는 신생인력이였으니 아무도 나를 몰라줬다.
새로운 조직에서 일을하면서, 대충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알겠는데
생판모르는 내가 업무요청을 하니 협조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하필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는 대외적으로 역풍을 맞았고
내부적으로는 예산삭감, 인력축소로 인해 함께 일하던 선배들이 다 떠났다.
결국 나 혼자 남아 성과도 없고 매출도 없는 프로젝트를 근근이 이어만 가고 있는 상황이였다.
나로서는 처음 느끼는 무력감이자, 무기력감이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였고
성취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좌절의 연속이였다.
그곳으로부터 오는 우울감과 불안, 나는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감정과 기타등등
상담에서 이런것들을 발견했다.
보통 2회기 정도 탐색하는 작업인데, 그래도 빨리 찾아서 다행이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이번 상담을 통해 평범함이 주는 자유함,
그리고 나를 수식하는 수식어없이 one of them 으로 사는것이 주는 행복감을 느껴보자고 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하지 않고, 특출나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것, 그게 가장 어려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