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수엘라(Cazuela) 가 먹고싶다고 했을 뿐인데
2012년, 23살의 어린 나이로 칠레에 갔다. 칠레가 왠 말이야? 칠레? 아프리카야?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었고, 당시에는 여행 정보 조차도 잘 없어서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그램 보면서 준비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마지막 1학기를 남겨두고, 도저히 졸업은 안되겠다 싶어서 도망치듯 칠레로 떠났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두시간 반,
꾸리꼬(Curicó)라는 도시에서도 작은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한시간 반 더,
우알라녜(Hualañé) 라는 작은 산속마을에서 6개월은 내 인생의 최대 심심했던 기간이자, 최대 힐링이자, 최대 한량의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나는 노란색 이층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칠레사람 엄마랑 같이 살았고, 엄마는 1층에 나는 2층에서 지냈다. 1층 작은방에는 다른 칠레언니도 있었는데 엄마랑 가족은 아니였고, 주중에만 우알라녜에 있고 주말엔 딸이 있는 다른 도시로 갔다. 어느날은 산티아고에서 손님이 오셔서 밖에서 놀고있는데, 엄마가 빨리 오라고 전화가 왔다. 오늘 축구하는 날이라 피자구워놨다고,, '아..나 밥 먹었는데..' 하면서도 집에 쏜살같이 달려갔고, 엄마가 구워준 따뜻하고 짭잘한 피자를 우걱우걱 먹었다. 엄마는 항상 내 걱정이었다. 브라질로 휴가를 가는데, 혼자 있을 내가 걱정된다고 친척들에게 돌아가면서 우리집에서 잠을 자라고 했다. '아..친구들 불러서 놀려고했는데..' 결국 친구들은 못불렀다. 나쁜짓 하려는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겨울에 벽난로 켜는 법, 온수 트는 방법, 문이 안에서 잠겼을 때는 누굴 불러서 열어야 하는지. 그리고 온 동네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해놔서 무슨 사고를 치던, 무슨 어려움에 처하던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딸 처럼 굴었다. 우리집 1층 장식장에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부터 사진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걸려있는데, 그 오른쪽 가장 밑에는 내가 있다. 칠레 가문에 뜬근 없는 동양인 하나..
칠레를 떠날 때 쯔음, 나는 사실 조금 지쳐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고 졸업과 취직에 대한 압박도 있었다. 그리고 평온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이 곳의 삶에 조금 실증이났다. 큰 감흥 없었고, 그저 빨리 정리하고 가고 싶었다. '나중에 놀러올게요!' 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2016년, 진짜 다시 엄마 집으로 갔다.
'얘..진짜 왔네..?' 라는 표정으로 날 보던 엄마가 생생하다.
진짜 올줄, 누가 알았을까. 그냥 누구나 의례 하는 마지막 인사겠거니 하고 생각했지
나도 다시 돌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그러던 중 남미에 갈 일이 생겼고, 남미에 왔으니 '우리엄마 보러가야지' 하는 맘에 무작정 칠레로, 무작적 꾸리꼬로, 그리고 무작정 우알라녜까지 와버렸다. 잘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버스터미널에서 발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 맞아, 여기였어. 여기서 탔어. 꾸리꼬에서 먹던 꼼플레또 핫도그도 먹어주고, 미니 버스 타기 전에 늘 사던 빨메라도 당연히 샀다. 그 시절 내 루틴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이층집, 내가 살던 방, 침대, 모든게 그대로였다. 우알라녜의 친구들도 그대로고 엄마도 그대로였다. 1층 장식장에 있는 액자에 빛 바란 내 사진도 여전했다. 마음이 몽글몽글 했다.
나는 칠레에 있을 때 까수엘라 라고 하는 따뜻한 국물 요리를 좋아했다. 습하고 찬 바람이 옷 사이를 파고드는 겨울에 따뜻한 까수엘라 한 그릇이면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칠레에 가기 전,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다들 뭐가 가장 그립냐고 물어봐서 당연히 까수엘라! 라고 했다. 나는 덕분에 칠레 여행 내내 매일매일 까수엘라를 먹었다. 방문 하는 친구집마다, 심지어 우리엄마도 까수엘레 한 냄비.. 밖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까수엘라 먹으러 가자고 하는 통에 12월 한 여름에 1일 1까수엘라 하고 돌아왔다.
얼핏 얼핏 기억이 난다.
작은 도로가에 있던 노란색 우리집과, 뒤쪽으로 있는 el 9 라는 슈퍼마켓.
그리고 마을 가운데에 있는 빵집과, 주유소 뒤편으로 있던 친구네 집
새벽까지 술을 잔뜩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별자리 보면서 가면 된다고 이상한 소리 하면서 걷던 길
그리고 우리집 정원에 항상 내가 앉아 담배를 피우던 흔들의자도
다시 갈 수 있을까?
다시, 갈 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