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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망 마당 있는 집

끝자락에서 만나는 내 어릴적 화단


저의 로망이 하나 있다면 정원이 있는 마당 넓은 집에 사는 거예요.

푸른 하늘을 좋아하고 들풀을 좋아해 그런가 봐요.

초록초록 잔디가 있는 마당 있는 집 벤치에 앉아 햇살을 먹으며,

커피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언제 이루어 질지 모르나 꿈 리스트에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마당 있는 집이랍니다.



아마도 어릴 적 마당 있는 집의 정서와

그보다 더 어릴 적 기억도 하지 못하는 고향

시골의 풍경이 내재되어 있어 그런 것 같아요.


어릴 적 집 마당에는 5~6월이 되면 붉은 장미가

담장이 넝쿨식물처럼 담벼락을 붉게 물들였어요.

빨갛고 예쁜 장미가 소담하게 무리 지어 필 때면

풍요로움과 생기를 선물하는 것만 같았어요.

늘 '장미는 어쩜 저렇게 예쁠까' 감탄을 했지요.


그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샐 수도 없이

소담한 장미꽃을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꽃 중 하나가 바로 장미꽃이고

장미향수도 좋아하지요.



아침이 되면 전선줄을 타고 올라가는 나팔꽃들이

활짝 꽃을 피웠어요.

'모닝글로리'라는 이름처럼 나팔꽃은 오후가 되면

또르르 말려 있었고 그 모습이 신기해

나팔꽃의 말린 겹겹이 꽃잎을

활짝 펴보고 싶어 못살게 굴곤 했지요.



때마다 봉숭아 꽃과 잎을 빻아 손에 물을 들였고

분꽃의 끝자락을 쏙 빼면 만들어지는

분꽃 귀걸이를 양쪽 귀에 대롱대롱 매달며 놀기도 했지요.



때가 되면 보랏빛 라일락이 꽃을 피우며

꽃 향기를 전해 주었어요.

라일락 꽃을 따 조그만 꽃 자락 끝에 꽃을 매달고

그 뒤를 이어 또 꽃을 매달고 메달아

라일락꽃을 책장 사이에 말리기도 하였지요.



사루비아(샐비어) 꽃의 꿀을 쏙쏙 빼먹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고.

엄마가 심어 놓은 토마토가 열매를 맺을 때면

자그맣고 빨간 토마토를 '톡' 따 먹는 것도 큰 기쁨이었지요.

토마토는 싫어했지만 화단에 열리는 토마토만은

신기하고 예뻐 기다렸다 먹곤 했어요.





엄마는 계절이 바뀌고 꽃들이 질 때면

씨들을 잘 모아 하얀 편지봉투에 이름을 써 보관하셨어요.

마당 있는 집이 개조되어 신식 빌라가 된 이후에도

저희 집에는 화초가 참 많았습니다.

우아한 난이며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지요.

엄마는 어떤 화초가 찾아와도

건강하게 잘 키우셨어요.


엄마가 키우시던 행운목은 어느 날

42송이의 꽃을 피웠어요.

행운목이 꽃을 피우면 동구 밖에서도 안다고 할 정도로

마을 전체까지 향기로운 향이 퍼진다고 해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향기로운 향이 거실 가득 퍼졌습니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하루아침에

꽃을 피운 듯 행운목이 꽃을 피웠고

저는 너무 신기해 꽃을 세어보았어요.


행운목은 꽃을 잘 피우지 않는 꽃이라고 합니다.

살다가 볼까 말까 한 꽃이라고 해요.

꽃을 피워도 한두 송이의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신기해 꽃이 가득 피어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꽃의 수도 새어 두었지요.


저는 세 딸을 기르고

집안 도처에 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손이 되어주느라 여전히 화초를 기를 여유가 없어요.

그러면서도 봄이 되면 프리지어를 그냥 못 지나가고

가끔씩 조그마한 화분들을 사 오곤 하지요.

그러면 남편이 화초 죽이는 재주가 있다며

사지 말라고 말리지요.


알면서도, 화초가 말라 버리기도 하면서도

꽃집 앞을 서성거리게 되는 건 내 안에

추억의 꽃이 심겨 있어서 그런가 봐요.

이제 보니 추억의 꽃들 다 제가 좋아하고 있었네요.



아가씨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날 엄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병원에 가게 되셨을 때

엄마가 곱게 가꾸시던 베란다의 화초들은

하루아침에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화초도 살려 건강하게 키우시는

화초의 진심인 엄마의 화초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해 주려고

열심히 물을 주었어요.


갑작스러운 사고로 처음 병원에 가신 날로부터

엄마는 병원 응급실을 거쳐 일반실을 거쳐

재활병원으로 이사하시고 천국의 영원한 집으로 이사하실 때까지

수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은 아무도 몰랐지요.


엄마가 오시면 기뻐하시게

엄마의 화초들을 잘 지켜주자고 생각했는데

그 기간은 제 생각과는 달랐지요.



엄마 대신 화초 지킴이가 되어

화초의 물을 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때일까요?

행운목이 이런 놀라운 선물을 내게 전해 주었어요.


집 안 가득 진동하는 향기를 담을 순 없지만

가득가득 꽃 피운 행운목의 사진은 담을 수 있었기에

필름 카메라에 사진으로 찍고 인하해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보여 드렸지요.

엄마도 신기해 하시고 흡족해 하셨어요.


곧고 굵게 쭉쭉 뻗어 있는 행운목만을 어릴 때부터 십수 년을 보다

하얀 밥꽃 같은 꽃을 가득 피운 행운목을 보며

'세상에 이런 일이'하며 바라봤던 때가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꽃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꿀과 같은 진득한 액을

뚝뚝 떨어뜨리며 향기를 뿜어주었어요.


향기에 약한 여자가 온 집안 가득

향기로움으로 채워주는 행운목에게 매력을 느꼈고

마치 마른나무에 꽃이 피듯

전혀 예상하거나 보지 못했던 모습을 만나게 해 준

행운목이 신비롭기까지 했었어요.


어르신들부터 동료들까지 다들

행운목 사진을 보고 신기해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농담처럼 꽃의 수대로 복권을 사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행운이 가득한 일이라고 말했지요.


행운목에 꽃이 핀 것처럼

저도 마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펼쳐질 것 같은

행복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이미 그런 일이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죠.

행운목이 꽃을 피웠으니까요.


빈 공간이 없이 집안 가득 향기로 채워주는 행운목이

내게 사랑을 베푸는 분의

심부름꾼이 된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엄마가 오랜 세월 정성스럽게 키우신 행운목의 꽃을

이제 막 물을 준 내가 다 누리는구나 싶다가도

엄마가 없는 빈 집을 지키는 내게

엄마가 전해주는 선물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나의 로망 마당 있는 집의 글이

내 어릴 적 추억의 화단으로

나를 데려갈 줄은 몰랐네요.

글이 만들어 간 길에

어릴 적 추억의 화단이 있네요.


시간이 지나 나의 로망 마당 있는 집에서

여유로이 차를 마시며

마당을 뛰노는 손주들을 볼 때면

저도 엄마처럼 꽃 좀 다루는 여자가 돼있을까요?


사랑의 꽃 가득 피워

추억 보따리 선물할 정원을

저와 저의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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