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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따뜻한 발을 닮은 내 남편의 포근한 배

손발이 좀 찬 편이에요. 지금은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아가씨 때 겨울이 되면 엄마의 뜨끈한 게르마늄 전기장판 요에 몸을 맡기기 위해 엄마와 한방에서 자곤 했어요. 제방 침대 위가 좀 차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그 겨울이라도 딸과 한방에서 자고 싶은 엄마의 마음 때문이었지요. 겨울엔 엄마와 그렇게 한 요에서 자고 추위가 거치고 봄소식이 전해 올 때면 금방 침대로 달려가 내방을 즐기던 딸이었어요. 밤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책도 보고 친구와 통화도 하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곤 했지요.


 엄마와 함께 자던 추운 겨울엔 제 발이 엄청 차가웠어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씻고 난 후 누울 땐 더더욱 그랬지요. 그러면 엄마는 어쩜 이리 발이 차냐며 엄마의 따뜻한 발로 제 발을 포개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럼 저는 괜찮다며 얼른 발을 빼곤 했지요. 제 찬 발이 엄마의 따뜻한 발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밤마다 엄마는 제 찬 발을 향해 발을 뻗었고 저는 그때마다 괜찮다며 발을 치웠어요. 엄마의 발뿐만 아니라 발가락의 끝자락이라도 닿을쌔라 엄마와 나란히 누워 꼭 붙은 몸보다 더 멀리 발을 뻗어 자곤 했지요. 


지금 돌아보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그 찬 발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싶었을까 싶어요. 엄마가 되고 보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막내딸은 너무나 찬 내 발이 오늘 하루도 수고하고 쉬려고 누운 그 따뜻한 발에게 닿게 할 수가 없었어요. 늘 막내까지 이만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엄마를 향한 감사와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엄마는 오 남매를 혼자의 몸으로 키우셨어요. 오 남매를 여린 여자의 몸으로 키우셨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고 경우 바른 삶을 살아가셨어요. 성품의 본바탕이 그러하시지만 아마도 홀로 키우셨기에 더더욱 그리하셨을 거예요. 모두 다 출가하고 저와 엄마와 단둘이 보낸 시간, 찬발로 이불속으로 들어가 따뜻한 발과 만나던 시간, 막내딸답게 엄마에게 많은 아픔과 찬 발을 내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미망인의 어깨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와 슬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여섯살 아이는 그럴 수가 없는 아가씨가 되었지요.


그런 딸인 걸 아셨던지 결혼을 하기 전 날 엄마가 막내딸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그간 엄마랑 살면서 제일 속상하고 힘들었던 것이 뭐였어. 다 말해봐."

무언가 더 해주고 싶고 마냥 사랑의 옷을 입혀 키우고 싶으셨던 엄마맘에 해주지 못한 미안함, 전해주고 싶은 사랑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런데 그때도 막내딸은 더없이 주고 또 주고 자신이 부서지도록 희생하며 사랑을 부어주신 세월을 알기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거 없어. 엄마"라고 짧은 대답을 전합니다. 

'엄마 혼자서 오 남매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애쓰셨어요. 저까지 시집보내고 혼자 계시려면 얼마나 적적하실까요. 엄마 저에게 아낌없이 해주셨어요. 엄마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너무나 훌륭하세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속에 담긴 긴 말은 전하지 못했어요. 눈물을 보일까 봐 울어버릴까봐 막내딸도 아주 짧을 말만 웃으며 전하며 자리를 피했었지요. 

돌아보면 이 또한 막내처럼 비비고 띵깡을 부릴 것을, 딸 마음에 여한 없이 도닥이며 보냈다는 위로라도 드릴 것을 하는 마음이 이제야 들어요. 그땐 그게 제일 큰 효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원하셨겠지요. 슬픔을 맘껏 보이지 않았던 어린 딸을, 찬 발을 덤벙덤벙 맡기지 않는 다 큰 딸을 안아주고 싶으셨겠지요.







제가 결혼을 하고 스스로 놀란 부분이 있어요. 

바로 추운 겨울 핑크 꽃이 가득 내려앉은 포근한 이불 안에서 차디찬 제 발이 향하는 곳 때문이지요. 


월트 디즈니의 미키가 그려진 파란 잠옷을 입은 남편과 미니가 그려진 핑크 잠옷을 입은 신혼부부는 나란히 꽃 침대에 누워있어요. 그러면 아내의 차디찬 발은 남편의 따뜻한 배를 향해 질주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크하"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칩니다. 그러면 아내는 더더욱 장난기가 발동해 발을 깊이깊이 들이밉니다. 뿐만 아니에요. 차디찬 아내의 발은 남편 몫인 듯 배에 자리를 잡고 위풍도 당당합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찬발이 엄마의 따뜻한 발가락 하나에도 닿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발을 쭉 빼던 저와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에 흠칫 놀랍니다. 그러면서 더 건강한 마음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가고 있는 내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리 할 수 있도록 큰 사랑으로 아내 곁에 있는 남편이 참 좋습니다.


남편이 늦은 시간까지 수고하고 바깥 찬 공기를 안고 방금 퇴근해 돌아왔어요. 늦은 시간 수고하고 돌아온 남편의 두 귀를 온기 가득한 제 손으로 감싸어 주고 있네요. 찬발로 장난을 일삼던 신혼의 아내는 세 딸의 엄마가 되어있고 지금은 거플 잠옷이 많이도 낡은 세월을 보낸 부부가 되어 있습니다. 

찬 남편의 귓볼에 따뜻한 손을 포게어 올려놓으니 따뜻한 발로 전해 온 엄마의 사랑도, 아내의 찬발을 품어준 남편의 사랑도 생생하게 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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