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일이에요. 코로나가 시작되고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둘째 딸이 엄마를 불쑥 부르더니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엄마 저도 게임하고 싶어요."
마음에서는 단번에 “안 돼”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엄마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의 생각을 더 묻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으니 자신감을 얻었는지 눈이 반짝반짝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네요.
"엄마 폭력적인 게임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건 나도 싫어. 그냥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 나오는 게임이나 동물 키우기 게임 같은 것 해보고 싶어. 내 친구 동생이 그런 게임을 하고 있던데 너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 나도 옛날부터 그런 것 해보고 싶었어요. 우리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그것도 많으면 이주에 한 번이라도 게임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싶었던지 그것도 매일이 아닌 일주일 한번 그것도 자주면 이주에 한 번이라도 좋다고 말하는 딸아이를 보니 그동안 많이 참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저와 남편은 결혼할 때 TV를 사지 않았어요. TV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우리가 꾸려갈 가정엔 TV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도 책을 벗 삼아 넓은 세상을 만나며 상상하며 꿈꾸며 생각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신혼생활은 알콩달콩 둘이 놀기에도 바빠 심심할 새가 없었고 함께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은 컴퓨터를 이용해 함께 영화도 보며 불편함 없이 생활했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영상을 간헐적으로 접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딸아이의 말에 순간 고민이 되었어요. 하지만 엄마 마음대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아주 많이 참았을 딸을 보며 엄마는 말합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족회의하자” 저희는 그렇게 가족회의를 소집하였지요.
가족회의 시간 딸들의 공방이 치열합니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큰 딸은, '물론 자기도 게임을 하고 싶지만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더 하고 싶어지고 그로 인해 책을 가까이하며 얻을 수 있는 유익성에서 멀어질 것 같다'며 반대합니다.
둘째 딸은 게임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도 생기고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클 거라고 설득합니다.
막내는 ‘이게 웬 떡이냐’싶어 밑도 끝도 없이 “나 게임할래 찬성이야 찬성”하며 무조건 찬성을 외칩니다. 이 날 게임에 대한 것은 아이에게서 나온 의견이고 아이들이 지켜가야 하는 안건이니만큼 아이들이 더 많은 의견들을 내고 엄마, 아빠는 중간에서 조율을 하거나 의견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날의 회의는 ‘게임은 한 달에 네 시간을 한다’로 결론이 났습니다.
-한 달에 총 네 시간 안에서 사용한다.
-외부에 나가서 함께하는 시간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주중에 학교 수업 등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난 후 하루 한번 하고 싶은 시간만큼 한다.
이러한 세부 규칙들도 생깁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큰아이가 컴퓨터를 열어 발 빠르게 게임시간 사용 체크표를 만듭니다. (엄마보다 나은 딸이에요. 체크표도 만들 생각을 하고 바로 실행해서 뽑아오고요.ㅋ) 그리고 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사용법도 알려줍니다.
그 후 딸들은 스스로들 몇 분 알람을 해놓고 게임을 합니다. 함께 회의하고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엄마가 관여하지 않아도 너무나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지켜 나가는 모습이지요.
아이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반영되어 정해진 일들은 아이들 스스로 지켜 나가고 동참하는 힘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은 가족회의를 사용해요. 물론 모든 일은 아니지만 특히 아이들에게서 어떠한 안건이 나오거나, 아이들이 해나가야 할 일이라면 아이들과 회의를 통해 함께 결정합니다. 이렇게 가족회의로 문제를 풀어 나갈 때 아이들이 회의에 임하는 자세와 그 후에 회의 결과를 지켜 나가는 모습은 평소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은 회의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내 의견이 전달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합니다. 또 때로는 100% 내 맘에 들진 않더라도 그 가운데서 타협점도 찾아보고 일보 후퇴해서 조율 안을 내보기도 합니다.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100% 되지 않는다 해도 순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멤버들도 합의점을 위해 조금씩을 양보한 것을 보게 되고 자기의 생각보다 더 좋은 의견을 냈다는 것을 납득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호통을 치며 강제적으로 끌고 갈 때랑은 차원이 다른 모습이지요.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한참 신나서 게임을 하던 딸들은 지금은 게임을 많이 잊고 있어요. 회의 때도 반대에 한 표를 행사했던 첫째 딸은 처음 몇 번 흥미로 해본 게 다이고 별로 재미를 느끼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엄마! 게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둘째 딸은 너무 좋아하며 게임시간을 아껴가며 사용하여도라고요. 한 달 네 시간의 게임시간을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더라고요. 언니들이 이러니 막내도 한참 열심히 하던 게임을 잊고 지내요.
그래서 '그때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 또 가족회의가 이루어 질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아이들의 의견이 십분 발현되는 시간이 되면은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