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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답사 갈까요?

어느 봄날, 역사 답사의 시작

by 낡은용

선생님, 너무 좋아요. 같이 가요.

YG쌤이 의자를 돌려 앉으며 대답하셨을 때 눈앞으로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2023년 3월, 나는 새로운 학교로 발령받았고 YG쌤과 MZ쌤을 만났다. 처음 근무했던 학교는 나 혼자 역사 교사였기에, 같은 과목 교사를 만나자마자 반가웠고 든든했다. 그리고 조금 가까워지자마자 대뜸 같이 답사를 가자며 들이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현장을 직접 가서 보고 그 숨결을 느끼는 삶을 어릴 때부터 꿈꿨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우리 땅 곳곳에서 느낀 그 ‘숨결’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 비슷한 경험이 훗날의 나를 만들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다만, 나와 뜻이 비슷하고 실현 의지가 있는 동지를 여태 만나지 못했을 뿐.

그런데 새로운 근무지에서 나와 동갑이고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MZ쌤을 보자 왠지 동지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역사 답사 같이 안 다닐래? 내가 평생 꿈꾼 건데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못했지 뭐야.”

MZ쌤은 특유의 쿨한 표정과 말투로 “좋아!” 라고 대답. 너무 쉽게 대답이 돌아와서 오래도록 실현하지 못한 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YG쌤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한 번 여쭤보자.”

이모뻘인 YG쌤에게는 아직 거리감을 좀 느끼고 있었는데, YG쌤이 의자를 돌려 앉으며 눈을 빛내신다. “저 운전 엄청 잘해요. 젊을 때는 차 타고 전국 일주도 했어요.” 삼십 평생 꿈을 이루지 못한 나를 위해 하늘이 이렇게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주실 수도 있구나.

그렇게 세 명의 여자 역사 교사는 답사팀을 꾸렸다. 기획도, 예산 편성도, 자금 조달도, 이동 수단도, 주제와 일정 편성도 모두 by ourselves.


“제일 먼저 어디를 가 볼까요?” “주제가 가장 중요해요. 답사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곳을 가요.” “악,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요.”

발 딛고 선 모든 곳이 유적지라는 경주, 하회마을로 유명한 안동, 민주화 운동의 산실 광주, 조선 왕조의 뿌리인 전주… 애써 시간을 내서 답사를 가려고 하니 갈 곳은 너무 많고 여유는 없었다. 우리 모두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K-직장인이며, 학교에서 학생들과 씨름하고 나면 귀가 후 일단 쓰러지곤 했으니. 돈이라고 넉넉한가. 최대한 가성비 있게, 그리고 짧고 집중적으로 국토를 누벼야 했다.

“금요일 퇴근 후에 바로 가요!”

과감하게 나온 제안. 그래서 우리는 그때부터 퇴근 후에 답사를 다녀오기 시작했다.


금요일 오후 4시30분. 기나긴 일주일을 보내고 모두가 지친, 그러나 주말에 대한 기대로 약간 들뜬 표정으로 퇴근한다. 그 사이를 가벼운 옷차림에 무거운 배낭을 멘 우리가 지나간다.

“어디 가시나 봐요~”

마주치는 선생님들이 묻는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씩 웃으며 대답한다.

“답사 좀 다녀오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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