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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 Emilio Oct 27. 2020

외로움이 내게로 왔다

팀장으로 산다는 건2_#3

' 목표 달성을 위한 현실적 대안' 편을 통해 '부팀장'을 두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팀제의 애초 목적과는 거리가 있지만, 팀장이 고려할만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팀장은 장차 팀장이 될 재목이고, 팀원 중에는 부팀장이 될만한 재원을 미리 챙겨볼 수 있는 계기로 삼으실 수도 있습니다.


제게도 부팀장 후보가 될만한 팀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직위는 낮았지만(대리) 제 뒤를 이을 사람이 돼주길 바랐죠. 사무실 자리 배치를 '팀장 - 부장 - 과장 - 대리'  순서가 아니라 '팀장 - 부장 - 대리 - 과장' 순으로 했습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얘가 부팀장이 될 후보다.'


어느 날, 부팀장에 대한 언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 의향을 물었습니다.


"이제 너도 장차 팀장이 될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 당장은 아니어도 부팀장을 맡아서 팀장되는 연습을 하면 좋을 거야."


잠시 말이 없던 그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팀장 되기 싫어요."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승진하면 팀장급도 생겨서 연봉도 올라가고, 팀원들 평가권도 가질 수 있고... "


팀장이 되면 좋아지는(?) 점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혹시 책임이 생기고, 위에서 욕먹는 것 때문에 그런 거야? 직장생활은 원래 욕먹는 대가로 월급 준다고 하잖아. 그런 건 다 과정이지."

"아니요,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에요."

"그럼 뭣 때문에 그런데?"


한참을 뜸 들이더니만,


"팀장은 외로워서 싫어요."


팀장은 외롭다

팀장은 고독해지는 자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크지 않지만, 권한을 갖게 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되며, 이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 결과는 기분 좋은 경우보다 속 아픈 경우가 훨씬 많지요. 저 역시 그런 결과 앞에서 좌절할 때가 많았고, 그 모습이 외로워 보였나 봅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과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엔 혼자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20XX년 회사는 이미 3개월 치의 급여지급을 못 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사장이 횡령하거나 불합리한 운영으로 초래된 상황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출시한 제품의 평판은 좋았기 때문에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거란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지요. 어느 날 사장님 호출이 있었습니다.


"김 팀장, 우리 이번에 A사 수주전에 뛰어들었잖아. 조금 전에 낙찰이 되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어. 휴우... 알다시피 지금 회사에 현금은 바닥난 상황이네. 인력감축을 위해서 팀에서 세 명을 골라 다음 주까지 보고해줘."


상황을 뻔히 알고 있었던 만큼 한마디도 못 하고 나왔습니다. 관련 사항을 인사팀장에게 물어봤습니다.


"들으신대로 상황이 대략 그렇습니다. A팀장, B팀장한테는 아예 권고사직 통보를 했고요. 그래도 김 팀장님은 남으실 수 있습니다. 재무팀에서 적지만 자금을 융통할 듯하니 상황을 지켜보시죠."


인원감축 요구

우선 팀에서 가장 선임이고, 가장 능력 있는 팀원을 골랐습니다. 실력이 있는 만큼 다른 곳으로 이직을 용이하게 할 친구였습니다. 다음은 실적이 가장 좋지 않은 팀원을 골랐습니다. 경력직이었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매출에 기여하기 힘든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한 명을 더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거였으면 내가 잘리는 게 낫지. 내가 잘리는 게 나아."


불면의 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사장님께 인원 감축 대상자가 적힌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아니, 김 팀장, 내가 세 명을 올리라고 했는데, 왜 둘 뿐인가.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 건데, 팀장인 자네가 결심을 해줘야지. 자네 팀에서 두 명만 감축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건가?"

"아닙니다, 사장님. 저희 팀원 중에는 두 명 이상 감축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뭐야?"


제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사장님, 제가 사표를 내겠습니다. 그러면 세 명이 채워지잖습니까. 그러니 팀원들은 둘로만 해주십시오. 남은 팀원들이 합심한다면 기본 업무는 끌고 갈 수 있을 겁니다."


한참을 얘기했습니다. 사장님의 당황하고 낙심하는 모습이 저와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두 명만 감원하는 것으로 결단해주셨습니다. 퇴직자들에게 한 달치 위로금도 챙겨 주는 거로 했습니다.


사장의 결단

곧이어 팀원들을 모아 놓고, 회사 사정과 감축 계획에 관해 설명을 했습니다. 실력 좋은 팀원은 크게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었고(후일 들어보니 이미 타사로 입사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다른 팀원은 상당히 분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 번에 쏟아놓더군요. '이것도 팀장이 할 일이려니'하고 다 들어줬습니다. 두 팀원이 나간 후 남은 팀원들의 불평이 이어졌습니다.


"팀장님, 저희끼리 이 많은 업무를 어떻게 다 처리합니까?"

"고객사에서 OO과장(나가는 직원)이 담당했던 업무에 문제가 많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업무 인수인계도 안 해줄 거 같은데 누가 맡아야죠?"

"팀장님... "


'하아... 다들 제 살길 찾기 바쁘구나. 이런 친구들을 위해 내가 사표를 냈었던가.'


"저기, 퇴근 시간도 다 됐으니까. 일 얘기는 내일 하지."


다들 퇴근한 텅 빈 회의실에서 혼자 창밖을 쳐다봤습니다. 저녁 퇴근길로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내 맘 알아줄 사람 하나 없구나.'


팀장의 외로움

리더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되 '외로움이 별책부록처럼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팀장은 그 첫 번째 자리이며, 처음 겪는 상황이라 심정적으로 더 어렵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초보 팀장을 여럿 봤습니다. 아예 팀원들과 업무 외에는 담을 쌓고 속으로 원망을 키워가는 은둔형, 자신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것 같은, 일부 예스맨들만 옆에 두는 황제형 등. 이 모두 팀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저해해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할뿐만 아니라, 팀 성과 달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움이 찾아왔다면 리더로서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냉철함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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