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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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내린다.
봄비 치고는 바람이 차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오늘만큼 차가운 바람이 불었겠지만 금세 잊어버린 것일 뿐이라는 걸 안다.
#. 삶의 변화
상상해 보지 못한 삶의 변화는 지독히도 낯설다.
제주에 올 때는 혼자였고 그렇게 일 년을 살았다. 이후 기숙사에 들어와 직장 동료와 함께 공간을 셰어 했다.
우린 못 친했고, 우리라고 묶기기 싫어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의식적으로 '그 사람' 정도로 부르곤 했다.
(2년이라는 기간) 조심스러웠던 짧은 시간을 지나 긴 미움의 시간을 보냈고 미움만큼 긴 철저한 타인의 시간을 보냈다. 바라보는 시선과 느껴지는 퉁명스러움에 나의 일방적인 감정만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대화가 없었기에 '나의 오해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그 사람이 떠났다.
제주라는 섬에 뭍사람이라 불리는 존재의 거리처럼, 그 사람이 사용한 방에 들어섰을 때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책상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좋지만 어떤 우울이 찾아왔다.
먼저 떠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다 남겨지는 사람이 되는 건, 외로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처럼, 방 침대에 누워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리면 불 꺼진 난 자리가 보였다.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 생각지도 못했기에 당황스러운 상태였다.
'우리가 그럴 사이였던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분이 들까에 대해 며칠 동안 생각했다.
마음에 커다랗게 차치하고 있던 미움의 대상이 빠져나갔으니 그 크기만큼 마음에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다.
뚫려 버린 마음속에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독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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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오늘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겠지만 금세 잊어버린 오늘처럼, 며칠 뒤면 까맣게 잊어버릴 감정이란 걸 알고 있다.
#.
그저 나는 사라진 미움 안에 예쁘고 귀한 감정으로 덧칠하면 된다.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