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원대한 꿈
주말 저녁 프렌치프라이를 앞에 두고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했다.
비 내리는 밤은 옛 추억을 안주 삼기에 좋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는 몇 시간째 이어졌다.
친구는
어릴 적 부모님과 명동에 있는 경양식 집을 종종 갔는데 그때 롯데백화점의 샤넬 매장 앞을 지나갈 때마다 쇼윈도에 비친 마네킹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서른 살 쯤이 되면 저 원피스와 저 가디건을 입을 수 있겠지..'
지금 생각해 보니 꿈같은 착각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웃었다.
(어렸을 적 친구의 눈에 비친 샤넬의 옷은 디자인_어른들이 입을 수 있는 어른들의 옷_의 문제지 그 옷을 살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의 관점은 변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는 샤넬 매장을 보며 자란 아이였다. 하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흙과 풀과 나무를 보며 자란 그때의 난 그녀와 생각이 달랐다.
서른 즈음엔
'티비에 이름과 얼굴이 나오겠지...(한 번쯤은)'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밤 9시 뉴스 앵커의 단골손님처럼 이름이 오르내리던 때였다.
그게 바로 성공의 척도였고 표본이라고 생각했던 코찔찔이 시절이었다.
이미 그 나이는 훌쩍 지났지만 누구도 그때의 상상했던 서른 살의 모습으로 살고 있진 못 했다.
서른이 넘어 비 오는 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저 웃었다.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닌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