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II (선생님, 왜 이런 건 가르쳐 주지 않으셨어요?)
"... 내 집 없으면 서러운 거다.."
“집주인이 얼마나 못 됐는지.. 말도 못 하겠더라..”
고향엔 등 따신 집이 있었지만, 서울은 친척 하나 없는 불모지 그 자체였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딸의 안전을 위해 몇 날 며칠 집을 구하며 온갖 마음의 고초를 겪은 듯했다.
오랜만에 세입자라는 입장이 되니 ‘돈 없던 신혼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사는 동안 시시각각 ‘못 된 집주인’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어야 했지만, 첫 전셋집에서 꽤 오래 살았다. 집주인이 이제는 그 집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전까지였으니.
고향에 전화를 했을 때 ‘못 된 집주인’은 ’못 돼 쳐 먹은 집주인‘이 되어 있었다.
암묵적으로 연장된 계약기간이 남아있었으므로 사실 당당한 건 세입자인 우리였다.
평소 집주인에 대한 엄마의 감정 호소가 나에게 가랑비처럼 스며들어있었단 걸 그때쯤 처음 알았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 당시 가족이 타인에게 느꼈을 모멸감, 그 정도에 대한 반감이 내재화되어있었다.
그 집을 떠날 때 표면적으론 우리가 승리를 거뒀지만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누구도 해피하지 않는 결과였다.
시간이 꽤 흘렀고 결혼을 한 자식들은 하나 둘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 삼삼오오가 모여 내 집 이야기를
할 때면 어디서 다 같은 교육이라고 받은 듯 ‘저기 저 화장실만 내꺼고 나머진 은행꺼야.‘라는 말을 가족들이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는 젊은 세대의 현실이 그러니 앓는 소리라기 보단 자조 섞인 말이었다.
대주주는 은행이었고 일개 개미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명의는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