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라이프

집 III (선생님, 왜 이런 건 가르쳐 주지 않으셨어요?)

by just E

그 해 자식들의 내 집 마련은 부모님 자신들이 서울에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을 마련한 것처럼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덜어 낸 얼굴로 어느 때보다 해사했다.


사실 난,

전세로 2년마다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엄마가 느꼈던 집 없는 설움 같은 감정 보단 이사를 하면서 집을 알아보고 들어 갈 집과 나갈 집의 기한을 맞추며 혹시 모를 사기에 대한 염려 정도는 있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해내야 할' 당연한 절차에 불과했으며 번거로운 감정이 더 컸다.

전세에 대한 생각은 ‘내 돈 내고(부모님의 돈) 들어가는 집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따윈 없었다.


인생은 생각지도 못 할 때 뒤통수를 맞는 법


2년 마다 지역을 옮겨가며 떠 돌던 전셋집 살이에서 느끼지 못했던 설움은 의외 상황에서 직면했다.

그 감정이 마음에 스몰스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건 다른 형제의 새하얀 벽지가 발려진 새집에 방문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처음 장만한 새집에는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새로운 가구와 새로운 전자제품, 새로운 식기구 등으로 오히려 익숙하고 낡은 것들이 차지한 공간이 생경해 보였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으며 다시 눈 내리는 겨울이 오고 어느 틈에 커다란 창으로 색색의 꽃이 피는 봄이 왔다. 사계절을 보낸 새집은 집주인의 표정을 닮아있었다. 집주인의 취향대로 어질러지는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시간의 때가 묻은 공간은 오히려 길들여진 도구처럼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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