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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Jan 27. 2023

레인부츠

사계절만 살아보면

어쩌면.. 정말..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눈을 뜨니 게스트하우스 침대였다. 

평일이어서 인지 제주 여행의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혼자 4인실을 사용하게 됐다.

잠들기 전 일기예보의 비 소식이 맑음으로 바뀌어있길 바라며 침대 머리맡에 뒀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비가 문제가 아니다.


‘... 영상 20도라고?’


순간 잠들어 있던 모든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이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시 한번 휴대폰을 확인했다.

영상 20도. 꿈이 아니다. 도대체 1월 중순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남쪽지역의 기온 스케일은 블록버스터급이란 말인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보이는 건 몇 미터 떨어져 있는 회색 시멘트 벽면과 비를 머금은 잿빛 하늘이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엔 따뜻함이 묻어있었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그저께, 어제. 아니 늦어도 오늘 김포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일 년 동안 살 집을 구해야 한다.


집을 찾으러 돌아다니면서 삶을 사는 제주는 여행을 다닐 때 알던 제주와 너무도 달라 낯선 모습에 생경함이 느껴졌다.


차를 몰고 1시간쯤 달리면 원하는 초록이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고 서울에서도 볼 수 있던 수많은 도넛 가게가 즐비 해 있던 제주.

이게 바로 매년 내가 만나던 제준데..


휴대폰 어플에 뜬 버스 도착 시간과 버스 정류장에 표시된 도착 시간엔 미묘한 간극이 있었다. 

모든 게 다르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휴대폰과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았다.

어플을 믿어야 할지? 정류장 안내판을 믿어야 할지? 더 큰 혼란이 생겼다.


제주가 가져 온 혼란의 서막이었다.


이전과 지금의 생경한 제주는 버스 시간의 간극처럼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마음의 간극을 만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목적지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실수를 여러 차례 하면서 타지인이라는 사실과 외지에 대한 피로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50미터도 채 걷지 않았는데 비가 내렸다.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 꽃이 그려진 접이식 우산을 펼쳤다. 

집을 구하러 오기 전, 제주살이에서는 예쁘게만 살아야지 다짐하며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우산이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우산의 마디마디가 꺾기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도 우산처럼 바람을 따라 이쪽저쪽 가늠 할 수 없는 방향으로 꺾기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을까?‘

‘... 해 내야지.‘

스스로 한 선택의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는 거라 배웠다.


조용하게 살고 싶다던 바람

어느 날부터 서울이 답답해졌고 빽빽한 건물로 들어차 있는 거리와 출퇴근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무명의 옆사람 날숨을 내가 들숨으로 삼켜야 하는 것들에 신물이 났다.

그렇다고 ‘지방에 내려가서 살아 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지금 이곳에 집을 구하러 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레인부츠를 나에게 선물해야겠다.


제주도의 집을 구하는 방식은 서울과 또 달랐고 결국 여행도 목적의 달성도 이루지 못한 채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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