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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E Apr 10. 2023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사계절만 살아보면

제주의 두 달,

가지고 있던 환상이 하나씩 깨어지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화창 할 것 같은 날씨는 몇 손가락에 꼽히고

비가 왔거나 흐리거나 미세먼지까지 대부분의 날씨엔 강한 바람이 동반되었다. 남쪽의 4월이지만 아침과 밤은 바람 때문에 춥기 일쑤였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일상에 금세 제주가 익숙해져 삶이 권태로워진 걸까.


제주에서 만나는 회사 사람들은 마치 외국인들 같았다. 이곳만의 문화가 있어 쉽게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선입견이 이미 높은 벽을 쌓아 저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려면 높은 허들(hurdle)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탁 막혔다.


그러니,

일이 단순한데 자꾸 뭔가 실수를 하게 되고 경력직임에도 불구하고 신입처럼 주눅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

돈을 벌고자 제주에 온 게 아닌데.

돈을 버는 공간과 시간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주말에도 내일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시간을 보냈다.


크게 잘 못 되었다.

이럴 거면 서울에서의 백수가 차라리 낫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일여 년 전의 일기를 읽게 되었다.

이직하고 들어간 회사에서 굴러온 돌로 있던 시간의 일기였다. 나무 그림자도 없는 팔월의 땡볕 무더위에 점심시간이면 회사 바깥을 배회했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이 미화시킨 옛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때도 처음은 힘들었구나.’

처음만 힘들지 곧 나아졌던 시간들이었다.


곧 나아질 시간들이다.


3월 벚꽃이 흩날리던 곳을 걸으며
초록잎이 한창 일 여름도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질 가을도
분명히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나는 여기에 봄과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러 온 걸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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