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만 살아보면
섬세하고 신중한 사람은(소심하고 타인을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수 일에서 수 년이 걸리기 마련이다.
몇 년 동안 부모님께
‘나 지방에 내려갈 수도 있어..’를 심심치 않게 말하며 지내왔지만 정말 제주에 오게 되면서 제일 놀란 건 어쩌면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막내딸이 섬으로 간다는 섭섭함과 걱정의 감정이 먼저였겠지만)
평일은 회사와 집만을 오가며 제주 같지 않은 5일을 보내고, 주말은 그저 여행을 온 것처럼 이 밤이 지나기 전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면 그만 일 것 같은
낯선 곳, 제주.
늦은 오후, 토요일 저녁에 깜박했던 샤워타월을 사러 다이소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 멋질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꿈꿔왔던 제주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있는 오후였다.
그저 일요일 오후였을 뿐인데.
날씨가 언제 다시 맑음일지 모르니
이런 맑음은 바짝 즐겨야 한다.
3개월 살고 확실하게 깨달은 건 날씨 정도 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