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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22. 2023

'15분 도시' 부산...스톡홀름에 정답이

몇 년 전 오거돈 부산시장이 직원에게 성추행을 저질러 사임한 뒤 박형준 시장이 당선됐다.

그는 부산을 '15분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15분 도시는 프랑스 파리의 카를로스 모레노라는 건축가가 고안한 개념이었다.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15분 거리 내에 학교, 직장, 병원, 공원, 문화시설 등이 있는 도시를 일컬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15분 도시의 핵심은 거의 자동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생활.

교통난 해결을 위해 교통수단에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스마트기술을 접목시킨다는 구상이었다.

지역 사회를 위해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공공건물을 다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탄소중립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도 덧붙였다.

말은 멋진데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박 시장은 부산이 가야 할 미래를 함축하는 일종의 브랜드 정책으로 15분 도시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부산엑스포를 유치한다면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쯤엔 부산이 많이 변해있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안타깝게도 2023년 11월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부산연구원의 부산시 거점문화시설 서비스 거리 (사진=부산시 홈페이지)

2021년엔 부산시 싱크탱크인 부산연구원이 박 시장의 15분 도시 공약을 구체화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세계 도시와의 경쟁에서 한 발 앞서 15분 도시를 실현하려면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문화서비스 거리'(문화시설에 도달하는 최소거리)를 단축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시민 최우선 관심사가 문화시설 접근성이라며 차량을 이용해 시속 25㎞로 이동할 경우 부산 시민은 평균 6.1분 거리에 공공도서관에 닿을 수 있고 공연장은 8.5분, 갤러리 8.6분, 박물관 9.4분, 영화관은 10.1분, 미술관은 16.9분이 걸린다고 했다.

부산시는 15분 도시의 핵심이 거의 자동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라고 했는데 차를 타고 문화시설에 도달하는 시간을 조사해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문화시설에 15분 내에 도달할 수 없으니 차를 타서라도 그 이전에 도착하라는 말인지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차로 평균 6.1분 거리에 공공도서관, 공연장 8.5분, 영화관 10.1분이 걸린다는 건 평생 부산시민으로 살아온 내가 보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산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과 도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보고서는 시민 문화권 보장 과제로 문화시설 확충, 기존 문화시설 활성화 전략 수립, 최적의 문화서비스 거리 기준 설정과 실행 강화, 문화서비스 디지털화 추진 등을 제시했다.

뭔가 앙꼬 없는 찐빵 같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부산시가 15분 도시를 위해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문화서비스 거리'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과 목표가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박 시장이 15분 도시 부산이라는 목표를 위해 계속 노력해 주길 바랐다.

(15분 도시가 추진되는 영국 옥스퍼드 등의 도시에서는 정부나 지자체가 강제로 주민의 자동차 이동을 연간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려고 해 주민 반발이 거세다고 한다.

부산시의 15분 도시는 개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꼭 필요하다.)

스톡홀름 카운티 26개 지자체의 15분 도시 도달률 (사진=다겐스 니히터)

부산 이야기를 한 건 얼마 전 스웨덴 언론에서 '15분 도시' 관련 기사가 나와 박 시장 공약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기사는 스톡홀름 상공회의소의 새 보고서 내용을 다뤘다. 핵심은 스톡홀름 카운티 주민 대부분이 자전거나 도보로 15분 거리 내에 주택, 직장, 상업, 의료, 교육, 엔터테인먼트 시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스톡홀름 카운티 내 26개 지자체에서 이 같은 시설에 자전거나 도보로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거주하는 비율이 50%이고 15분 거리 이내에 사는 주민 비율은 84%라고 했다.

카운티 모든 주민은 자전거를 타고 15분 이내에 녹지, 공원, 광장에 도달할 수 있고 도보로 이동하면 주민 98%가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카운티 내 지자체별로 15분 도시 도달률을 보면 스톡홀름시가 96.0%로 가장 높았다.

특히 스톡홀름시에서는 72%의 시민이 자전거나 도보로 5분 내에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스톡홀름시 다음으로 솔나(Solna) 94.5%, 리딩외(Lidingö) 92.5%, 순드비베리(Sundbyberg) 90.5% 순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리딩외에선 실제 10분 정도만 걸으면 여러 시설이 모여있는 일종의 쇼핑몰인 센트룸에 닿을 수 있었다.

반면 닉반(Nykvarn), 뵈르되(Värmdö), 에케뢰(Ekerö) 등 외곽 지역은 도심 주요 시설에 15분 이내 접근할 수 있는 인구 비율이 40% 미만으로 낮았다.

스톡홀름 주민의 96%가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곳에 도달한다 (사진=다겐스 니히터)

상공회의소는 스톡홀름이 파리, 바르셀로나, 시드니 등의 15분 도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라며 목표는 2035년까지 스톡홀름이 유럽 최고의 수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공회의소는 15분 도시의 가장 강력한 비판은 접근성 좋은 도심에 지원, 예산이 집중되고 저소득, 저학력 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 삶의 질과 도시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시민이 15분 도시 내에 안주해 여행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다른 지역과 교류가 소홀해질 수 있는 점이 약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응하려면 스톡홀름은 대중교통과 기타 이동수단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딩외 센트룸.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어 편리하다.

이런 보고서 수치가 얼마나 정확한지 잘 모르겠지만 스톡홀름에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었다.

보통 센트룸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상점이 모인 집합건물을 중심으로 지역 생활권이 형성돼 있었다.

지역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도보로 10~15분 거리에 센트룸이 있었다.

그곳엔 보통 2개 이상 브랜드의 마트, 도서관, 약국, 은행, 옷집, 안경점, 전자기기점, 이발소, 네일숍, 경찰서, 빵집, H&M  Lindex 등의 의류판매점, 편의점, 생활잡화점, 식육점 등이 몰려 있었다.

센트룸에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고 보면 됐다.

일테면 책을 빌리고 장을 보고 머리를 자르고 옷을 사고 연고를 구매하는 행위 등을 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셈이었다.

칼라플란 지하철역과 이어져 있는 fältöversten 쇼핑몰. 이곳도 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부대시설이 입주해 있다.

한국에서 스웨덴 센트룸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대형마트지만 상대적으로 개수가 적고 도서관 등 문화시설이 거의 없다. 또한 대기업 위주의 상업시설이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취지와도 거리가 있다.

스톡홀름 카운티에서 15분 도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센트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 시장이 염원하는 15분 도시의 모습이 스톡홀름에 잘 구현돼 있는 것 같았다.

센트룸을 중심으로 한 근접 생활권, 도서관 등 문화시설의 접근성, 전용도로나 보관소 등이 잘 갖춰진 자전거 인프라, 가까이 있는 자연이나 공원, 아이와 부모에게 친화적인 대중교통, 도심 전역 393개에 달하는 놀이터 등만 벤치마킹해도 살고 싶은 부산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유모차 끌고 가는 엄마들

시민이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부모들이 유모차를 끌고 버스나 지하철을 불편 없이 탄다면, 굳이 차가 필요하지 않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자가용을 탈 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탄소중립도시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


부산시는 5년 안에 약 500개의 어린이문화복합센터를 지어 15분 도시 앵커시설로 삼겠다고 했다.

마치 스톡홀름에 있는 센트룸 같은 역할을 하는 기대하는 듯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주먹구구식으로 개발돼 유휴부지가 부족한 부산에서 복합센터 공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고, 접근성 좋은 입지를 찾기는 힘든 형편이다.

땅을 구해 어린이문화복합센터를 짓더라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앵커시설은 제 역할을 못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이 도시에 대형마트나 쇼핑몰, 공장을 지을 때 도서관이나 공적 문화시설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무상 임대하거나 기부채납하는 걸 전제로 허가를 내주는 건 어떨까.

시민은 도서관, 문화시설에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고 기업 입장에서도 광고 없이 사람이 몰리는 괜찮은 공존이 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남는 공간에 도서관을 지을 것이 아니라 접근성 좋은 도서관 입지를 우선순위에 놓고 도시계획을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것이 부산시가 말한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는 문화서비스 거리를 줄이는 길일 테니까.


스웨덴에서 '15분 도시 스톡홀름' 기사를 읽으며 문득 내 고향 부산이 생각나 공상소설 한번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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