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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15. 2023

6년 쓴 아이폰 호상, 부검은 안하기로

미국 뺨치는 스웨덴 아이폰 점유율과 에릭슨, 노키아

스웨덴에 오기 전 첫째는 키즈폰을 사용했다.

SK텔레콤 전용 조그만 폰이었는데 쓸만한 앱이라곤 카카오톡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단체대화방의 개별 답글이 보이지 않아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개떡 같은 폰이었다.

'애들 폰이라고 무시하냐 이런 불편을 참고 살아야 하느냐 빨리 고쳐달라'고 민원을 넣어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첫째는 5학년 전체에 키즈폰을 사용하는 아이가 자신을 포함해 2명뿐이라며 눈물까지 보였다.

스웨덴에서 카톡으로 연락은 가능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굴러다니는 헌 아이폰7 액정을 수리해 첫째에게 줬다.

첫째의 첫 스마트폰 아이폰7

아내는 '스마트폰은 아직 이르다 스티브 잡스도 자기 애들에게 중학생은 돼야 스마트폰 사준다'고 했다.

난 '친구들 다 있는데 키즈폰은 너무 하지 않냐'고 딸의 편을 들었고 결국 아내가 슬쩍 발을 빼며 첫째는 기다리던 첫 스마트폰을 손에 넣었다.

첫째는 "폰으로 절대 게임 안 하고 시간을 정해서 사용하고 언제든지 아빠가 원하면 폰을 봐도 돼"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러나 한 달도 안돼 첫째는 비밀번호를 바꿨고 무늬뿐인 앱 제한기능을 썼다.(터치 한 번이면 제한이 풀리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지키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아이폰7이 먼 타국까지 와서 결국 돌아가시었다.

처음엔 마이크가 고장 나 통화 중 상대방 음성을 들을 수 없어 주로 메시지 연락용으로만 사용했다.

사설 수리업체에 갔더니 고칠 수 있지만 떨어뜨리거나 충격을 가하면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새 폰을 사라고 권했다.(업체 사장님 양심적이었다)

충전단자가 먹통이 돼 충전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기능은 사용할 만했고 불편하긴 해도 에어팟을 연결하면 통화는 가능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충전단자까지 고장 나 충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2017년에 사서 부모 자식 2대에 걸쳐 6년 넘게 사용했으니 기대수명은 채운 듯했다.

아이폰7 임종을 지켜본 셈이다.

이만하면 호상이겠거니 생각하고 더는 몸에 손을 대지 않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설 수리업체 사장님이 추천해 준 아이폰SE 2020 중고폰을 사게 됐다.

첫째는 기본설정을 마치자마자 뺏다시피 가져가 바로 비번부터 바꿨다.(원하면 언제든지 보라더니)

사망한 아이폰7(왼쪽)과 새로 산 아이폰SE 2020

스웨덴에 와서 보니 아이폰 사설 수리점도 생각보다 많고 사람들이 유독 아이폰을 많이 사용하는 거 같았다.

아이폰7, 8, SE 등 오래된 사양부터 최신 기종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한국은 삼성, 미국은 애플, 스웨덴은 에릭슨(Ericsson) 혹은 소니-에릭슨, 핀란드는 노키아(NOKIA)라는 휴대전화 브랜드가 있거나 있었다.

스웨덴 모바일 시장 점유율이 궁금했다.

2022년 스웨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출처 https://gs.statcounter.com)

스웨덴 사람들이 유독 아이폰을 많이 들고 다닌다 싶더니 지난해 스웨덴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이 55.3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삼성이 29.19%로 2위, 화웨이 4.39%, 샤오미 2.78%, 소니 2.07%, 원플러스 2.05%, 모토로라 1.28% 순이었다.

에릭슨은 흔적도 없고 노키아는 고작 0.36%였다.

2022년 스웨덴 아이폰 점유율(55.33%)은 애플이 있는 미국의 아이폰 점유율(56.74%)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정도로 스웨덴의 아이폰 사랑은 각별했다.

2010년 스웨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출처 https://gs.statcounter.com)

13년 전인 2010년엔 애플 점유율이 무려 71%를 넘어 사실상 독점시장 체제였다. 그다음이 소니(18.12%), 노키아는 8.1%였다.

삼성은 1.82%였는데 10여년 만에 스웨덴 모바일 시장의 2인자로 등극했다.

2022년 미국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출처 https://gs.statcounter.com)

한때 잘 나가던 에릭슨과 노키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0년대 후반까지 에릭슨은 노키아와 함께 휴대전화 시장의 거인이었지만 신제품 지연, 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잃었다.

에릭슨은 2000년대 초반 소니와 합병한 소니-에릭슨이라는 회사로 휴대전화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진이나 음악 등을 특화한 휴대전화로 2002년부터 5년 만에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을 2~3%에서 거의 8%까지 올렸다.

2007년에는 무려 1천300만대의 휴대전화를 팔아 16억 유로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2000년 초부터 개발을 시작한 스마트폰을 소니-에릭슨이 이어받았지만 수차례 실패와 특허 문제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한 애플에 시장을 잠식당했다.

2010년에서야 첫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이미 애플과 삼성이 시장을 선점한 뒤였다.

이후 소니는 에릭슨 지분을 모두 사들여 소니 모바일로 개명하며 모바일 시장에서 에릭슨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소니 모바일은 스웨덴 인력을 대폭 줄이며 1000명이 정리해고되기도 했다.


핀란드 국민기업인 노키아의 몰락 과정도 비슷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노키아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최강자였다.

하지만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손 안의 컴퓨터' 아이폰을 들고 나오면서 시장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재미있는 건 당시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 노키아나 소니-에릭슨이나 모두 기술이나 품질 면에서는 큰 위협이 안된다고 봤다.

하지만 아이폰의 대형 터치 스크린, 원버튼으로 이뤄진 매끈한 디자인, 앱스토어의 다양한 앱, 무엇보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에 소비자는 마음을 뺏겼고 노키아나 소니-에릭슨의 몰락은 시간문제였다.

노키아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재기를 위한 혁신도 보여주지 못하자 4년 만에 스마트폰 1위 시장을 애플에 내줬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불과 6년 만에 노키아는 세계 최정상 업체에서 꼴찌업체가 돼 버렸다.

애플 아이폰이 출시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노키아 시장 점유율의 드라마틱한 변화 그래프 (출처 https://www.statista.com)

애플에게 점유율 1위를 내주고 곤두박질친 노키아나 에릭슨의 현재는 어떨까.

에릭슨은 모바일 부문을 일찌감치 접고 통신장비 분야에 투자했고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 장비 회사로 거듭났다. 재빠른 손절로 기사회생한 경우다.

시장 선두주자였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여전히 모바일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보면 현재 판매 중인 스마트폰만 3개 라인 42종이다.

노키아의 다양한 스마트폰 라인업 (사진=노키아 홈페이지)

애플, 삼성과 달리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과 기능을 제공하는 중저가 전략을 펴는 것 같았다.

한때 잘 나가던 부자가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지만 반드시 재기하고 말겠다는 고집, 의지가 느껴졌다.

눈길을 끈 건 2000년 생산돼 1억2천600만대가 팔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휴대폰 중 하나라는 노키아 3310의 새 버전을 2017년 출시해 여전히 판매 중이었다.

옛 구매자에게 자신이 사용했던 휴대전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제품이었다.

2017년 출시된 노키아 3310(왼쪽), 원조 노키아 3310

노키아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구입해야 하는 이유로 2년간 월별로 시행되는 보안 업데이트, 수년간의 OS 업그레이드로 장치 수명이 길어져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사실 이건 애플이나 삼성도 하는 것 아닌가 싶긴 했다.

그럼에도 배터리가 더 오래가고 카메라가 몇 개인지를 강조해 소비자를 솔깃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나 스웨덴 아동의류 브랜드 POLARN O. PYRET처럼 '우리 제품 오래 쓸 수 있어 그러면 넌 지구를 살리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북유럽 기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키아는 현재 휴대전화 제조를 계속하면서도 네트워크 장비와 솔루션 제공 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했다.

치열한 레드오션이 돼버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의 선전을 기원한다.

"왜 노키아 폰을 선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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