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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09. 2023

그린피스에 무릎꿇은 스키폴 공항

feat. 가덕도신공항과 지역균형발전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환경운동가들이 기습 시위를 벌였다는 보도가 났다.

한국에서도 외신 기사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환경운동가들은 개인전용기를 가로막고 항공기 운항 감축, 개인제트기 운항 금지 등을 외쳤다.

500명의 활동가가 시위를 벌여 200명 이상이 공항 경비원에게 체포됐다고 했다.

자전거를 탄 환경운동가들이 공항 계류장을 휘젓고 다녔으며 경비원들은 이들을 뒤쫓기 바빴다.

공항 보안구역 안으로 어떻게 그 많은 자전거를 끌고 갔는지 의문이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게 있다.

그들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듯 웃고 있었다.

붙잡히면 체포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표정이 너무 해맑았다.

5개월 만인 지난 4월 스키폴 공항 관련 기사가 또 나왔다.

스키폴 공항 측이 2025~2026년부터 개인 항공기, 소규모 비즈니스 항공기 운항을 전면 금지하며 어떤 비행기도 자정 이후에 이착륙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이륙 금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착륙 금지)는 내용이었다.

자정 이후 운항을 중단하면 연간 1만편의 비행 횟수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더 많은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추가 활주로 건설 계획도 포기한다고 했다.


놀라운 발표였다.

환경운동가들이 시위 한번 했다고 5개월 만에 이런 공항정책을 내놓은 것인가.

스키폴 공항은 유럽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공항 중 하나다.

운항 횟수, 수송능력 등 면에서 영국 히드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등에 이어 유럽 3위권 공항이다.

운항 감소로 기존 입지가 흔들릴 수 있는데도 스키폴 공항의 결정은 단호했다.

스키폴 공항에서 자전거 시위를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 Greenpeace 2023

앞서 네덜란드 정부는 2024년까지 항공기 운항 횟수를 연간 50만회에서 44만회로 12% 줄이겠다고 제안한 상태였다.

이 배경엔 항공기 소음과 대기 오염으로 고통받는 스키폴 공항 인근 주민이 있었다.

그린피스 환경운동가들의 시위 영향이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스키폴 공항도 파리 기후협약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춘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인전용기의 전면 운항 금지 조치까지 취한 것은 언론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영국 브리스틀 대학에서 시민불복종과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Oscar Berglund는 스웨덴 언론 다겐스 니히터(Dagens Nyheter)와의 인터뷰에서 "스키폴 공항의 결정은 공항 인근 주민과 정부 압력에 따른 대응으로 보이지만 민간 항공기에 대한 항의는 의미심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들의 시위가 개인전용기를 소유한 극부유층들의 사적 비행에 대한 합법성, 정당성을 잃게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이어 "가장 부유한 사람이 소유한 개인전용기는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그 결과로 인한 고통은 가장 적게 받는 분명한 사례"라며 "인기 없는 대상(부유층의 개인전용기)과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있는 상대(스키폴 공항)를 겨낭한 환경운동가들의 파괴적인 시위는 종종 다른 유형의 시위보다 더 성공적일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그린피스도 스키폴 공항의 결정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개인전용기와 보잉 747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교 그래픽 (사진=www.realworldvisuals.com)

실제 개인제트기는 일반 항공기에 비해 20배 이상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지구환경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개인전용기로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미국 JFK공항까지 운항할 경우 2만5천56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반면, 보잉 747의 퍼스트 클래스는 2천835kg, 비즈니스 클래스는 947kg, 이코노미 클래스는 313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출처 www.realworldvisuals.com)

개인제트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보잉 747 여러 클래스 좌석을 모두 합친 것보다 6배나 많은 셈이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전용기 등 개인 항공편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부터 2022년까지 64% 증가해 연간 57만2천806편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EU 시민 55만명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

스키폴 공항에서 출발하는 개인전용기의 30~50%는 스페인 이비자, 프랑스 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등의 휴양지가 목적지라고 한다.

스키폴 공항에서 이 휴양지로 가는 정기 항공편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개인 전세기를 타는 슈퍼 리치들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셈이다.

스웨덴에서 출발하는 개인 항공기 이륙 횟수도 2020년 3천219편에서 2022년 1만285편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스웨덴에서 민간항공기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공항은 브롬마(Bromma) 공항이며 가장 일반적인 비행경로는 스톡홀름과 런던 사이다.

그린피스 환경운동가들의 자전거 시위가 스키폴 공항의 개인 전용기 운항 금지에 큰 역할을 한 건 분명해 보인다.

스키폴 공항에서 항공기 운항 감축과 개인전용기 운항 반대 시위 벌이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 Greenpeace 2023

스키폴 공항의 결정을 보면서 지난 정부에서 우여곡절 끝에 건설이 확정된 부산 가덕도신공항이 생각났다.

부산엔 김해국제공항이 있지만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이착륙을 금지하는 커퓨타임(curfew. 운항금지)과 최대이륙중량 문제로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 취항의 제약 요인이 돼 왔다.

김해공항은 주변에 신어산, 돛대산이 있어 중대형 항공기의 경우 산악과의 충돌을 피하려 화물량이나 승객수를 제한하는 최대이륙중량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장거리 노선 항공사 입장에선 정원의 3분의 1도 못 채우는 적자 운항이 불가피해 김해공항 취항에 난색을 표해왔다.

섬과 주변 바다를 메워 만드는 가덕도신공항은 이런 불안요소들을 없애 24시간 공항은 물론 유럽, 미주 노선 취항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24시간 운항 가능한 신공항 건설은 기후 위기를 더 가속화하는 원인이다.

이 때문에 스키폴 공항은 물동량, 승객 감소가 뻔한 상황에서도 지구를 살리는 길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운항시간 제한, 추가 활주로 증설 철회, 개인전용기 운항까지 금지한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최종 결정됐을 때 신공항의 환경 파괴 요인을 잘 아는 부산의 환경단체들은 한동안 침묵했다.

신공항에 대해 일체의 의견 표명이 없었다.

경남지역 환경단체가 신공항은 필연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높일 수밖에 없다며 반대입장을 취하고 나서야 부산 환경단체는 뒤늦게 반대 의견을 밝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공항 건설이 부산시 숙원사업과 시민 염원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부산 환경단체가 섣불리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김해공항 활주로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왕이면 가덕도신공항이 빨리 완공됐으면 좋겠다.

항공기 운항과 공항 건설이 환경적으론 지구를 위협해도 각성한 특정 국가, 공항 몇몇이 항공기 운항을 제한하는 것이 어마어마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항공산업의 큰 흐름을 되돌릴 것 같지 않다.

그보단 항공기에 사용되는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연료 가격이 보다 저렴해지고 내연기관을 대신할 근본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여객기는 과연 상용화할 수 있을까)

이미 지구촌이 1~2일 생활권에 접어든 이상 항공기 운항을 멈추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수도권 외 타 지역 주민은 외국 한번 가려면 KTX나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서울 가서 다시 인천공항까지 이동해 국제선을 타야 하는 시간적, 비용적, 육체적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


현재 가덕도신공항의 조속한 건설에 가장 큰 위협은 부산시의 2030 월드엑스포 유치 여부다.

지지부진하던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탄력을 받은 건 부산시의 엑스포 유치 노력에서 비롯됐다.

올해 11월 2030년 부산월드엑스포가 확정된다면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날개를 단다.

하지만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유치 노력이 만만치 않고 부산시는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앞세운 전방위 로비를 뚫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듯하다.

만약 유치에 실패한다면 '엑스포가 열리지 않는데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신공항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 가능성도 있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까지 만든 마당에 건설이 백지화되진 않겠지만 공항 건설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설 부산 강서구 대항동 일대 (사진=연합뉴스)

신공항 특별법 제정 전 일부 정치인들은 무지의 소치인 줄은 모르겠으나 고추 말리는 공항 지어서 뭐 할 거냐, 천문학적인 예산 들일만큼 항공 수요가 있느냐는 등의 논리로 특별법 제정을 반대했었다.

인천공항을 제외한 국내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를 먹여 살리는 순수익 1위 공항은 김해공항이다.

코로나로 항공기 운항이 멈추기 전까지 김해공항의 국제선 수요는 계속 증가 일로에 있었다.

신공항이 개항한다면 많은 승객이 인천이 아닌 가덕도를 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신공항 반대 세력으로 국내 거대 항공사들의 입김도 만만치 않았다고 본다.

국내 거대 항공사들은 인천공항에 승객과 화물량을 끌어모아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운영전략을 쓰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대한 좋은 평가는 시설과 운영의 문제도 있지만 이런 쏠림과 집중의 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전략이지만 이건 항공사 좋자고 상당수 국민 불편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덕도신공항이 건설되면 국내 거대 항공사들이 기존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 공항에 다양한 노선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가덕도신공항은 서울과 수도권에 쏠린 물류와 항공을 분산시키는 국토균형발전의 하나다.

스웨덴에 살면서 스톡홀름 카운티 내 몇몇 지자체를 가봤는데 (물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나 수박 겉핥기겠지만) 이민자의 많고 적음을 논외로 한다면 문화시설과 자연, 쇼핑시설의 접근성 면에서 아주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스웨덴은 지역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고 실제 예산도 많이 사용하는 듯했다.

부산 이전 논의 중인 KDB 산업은행 (사진=연합뉴스)

지방 이전에 반대하는 공공기관의 반발은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쏠려 있는 서울공화국 체제가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준다.

부산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한테서 부산 정도의 환경이면 그나마 살기 괜찮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KTX로 서울까지 2시간 30분 거리로 교통수단이 어정쩡한 타 지역보다 이동시간이 짧고 산 바다 등 자연환경과 문화시설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처자식을 서울에 남겨두고 오는 기러기 아빠들이 대부분이고 가족 전체가 내려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 때문이지 싶은데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 역시 국토 균형발전의 중요한 숙제다.

현 체제에서 지역 청년들은 지역에 살고 싶어도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과 수도권으로 간다.

서울과 수도권의 상대적으로 비싼 물가와 미친 집값에 지역 청년들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열악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서울로 갔던 청년들이 다시 지역에 돌아오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오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픈 현실이다.

지역 발전을 뒤처지게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지역 간의 이질감이나 열등감을 유발하는 서울공화국 체제에 비해 지역 균형발전은 사회통합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올해 1월 1일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이 시행됐다.

이 특별법은 법명에서 느껴지듯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을 통해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국가 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토의 균형 발전은 헌법 120조, 122조에도 명시돼 있다.

국가는 국토와 자원의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고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치인들과 정부 청사 공무원들이 헌법에 국토 균형 발전 조항이 있는 줄 아는지 모르겠다.

헌법에도 명시된 국토 균형 발전이 얼마나 구현되지 않았으면 특별법까지 만들어지는 것인가.

이제 특별법이 시행됐으니 앞으로 어떤 균형발전 정책이 나오는지 지켜볼 일이다.


스키폴 공항에서 가덕도신공항을 거쳐 지역 균형발전까지 너무 멀리 와버렸다.

결론은 대한민국 어느 곳에 살아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 다겐스 니히터(Dagens Nyheter), 그린피스 홈페이지, www.realworldvisuals.com, nos.nl 등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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