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나동 May 23. 2023

스웨덴 천재감독? 칸 씹어먹는 루벤 외스틀룬드

(feat.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타블로이드 팸플릿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아시아 상영작 소개 페이지

부산에서 매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듯이 매년 초겨울 즈음 스톡홀름국제영화제가 열렸다.

2022년 스톡홀름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오픈 존에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스웨덴 제목 '나의 아름다운 별'),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가 상영돼 반가웠다.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헌트'를 비롯해 한국의 해외 입양 문제를 다룬 '리턴 투 서울'(데이비 추 감독),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한 남자',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 75' 등 범아시아권 영화도 다수 스크린에 올랐다.

스톡홀름에서 상영되는 한국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

난 한국에서 보고 오긴 했지만 아내가 미처 못 본 '헤어질 결심'을 골랐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스웨덴에서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이야

상영관인 필름후셋(Filmhuset)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좌석은 거의 꽉 차 있었다.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는데 박찬욱 감독의 유명세 때문인지 국제영화제 특성상 사람이 몰린 건지 궁금했다.

맨 앞 좌석 두 자리만 운 좋게 비어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 상영관과 다르게 쇼파 느낌의 좌석이었다. 머리를 기댈 공간이 없어 불편했다.

현지인에게는 자막이 필요한 외국 영화지만 우리에겐 출연자들의 대사가 공기처럼 편안한 영화였으니 기분이 무척 색달랐다.

그러나 편안함도 잠시, 여주인공 탕웨이의 중국어 대사가 복병이 될 줄 몰랐다.

탕웨이가 유독 중국어로 말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낯선 스웨덴어 자막에 무척 답답했다.

외국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건 틀림 없었으나 마치 중국 영화를 보는 듯 혼란스러웠다.  

더스퀘어(The Square) (사진=DAUM 영화 사이트)

2년 전이던가, 부산 영화의전당 스웨덴영화제에서 몇 편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쓴 스웨덴 기자 출신 작가 스티그 라르손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몇몇 영화를 봤다.

그때 예매해 놓고 아쉽게 못 본 영화가 있었다.

더스퀘어(The square).

감독은 루벤 외스틀룬드(Ruben Östlund).

2017년인가 이 영화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했다.

스톡홀름에 오고 난 뒤 그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왠지 익숙한 풍경이 나올 것 같고 몰입이 더 잘 될 것 같았다.

실제 영화는 자주 다녀 익숙한 오덴플란(Odenplan) 역 광장에서 시작됐다.

더스퀘어는 뭔가 불편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남는 블랙코미디 영화였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한 남성이 겪는 우연과 불운, 위선 혹은 미필적 고의 등의 행위가 겹치는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특히 미술관 만찬 장면은 압권이다.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큼 예술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용이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헛웃음이 나오거나 가슴 먹먹한 장면도 더러 있었다.

포스마쥬어 (사진=DAUM 영화 사이트)

이 감독의 다른 영화도 보고 싶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22년 칸영화제에서 다른 영화로 또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했다.

작품 몇 개 만들지 않았는데 칸영화제 2관왕이라니 놀라웠다.

검색해 보니 2014년 만든 '포스 마쥬어 : 화이트 베케이션'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이 영화 역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고 했다.

일단 포스 마쥬어부터 봤다.

스위스로 스키 휴가를 떠난 한 가족의 다이내믹한 여정을 다뤘다.

역시 뭔가 불편하고 찜찜하고 그럼에도 잔상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 속 인물은 물론 영화를 보는 이도 주인공의 딜레마에 빠지도록 밀어 넣는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다운힐'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고 외스틀룬드 감독은 기획을 맡았다.

하지만 리메이크 된 다운힐 영화는 캐스팅, 구성 모두 원작에 비하면 처참한 실패였다고 본다.

슬픔의 삼각형 (사진=DAUM 영화 사이트)

2편의 영화를 본 뒤 난 루벤 외스틀룬드의 팬이 됐다.

202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도 이어서 봤다.

당시 국내에서는 정식 개봉되지 않은 작품이었다.

가급적 관련 기사를 읽지 않고 봤다.

슬픔의 삼각형은 한 모델 커플이 초대된 초호와 크루즈를 배경으로 스펙터클한 사건이 펼쳐진다.

중간부터는 인물, 설정, 줄거리 모든 걸 전복시켜 버린다.

좀 과할 정도의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었지만 영화 흐름상 나쁘지 않았다.

슬픔의 삼각형은 칸에서 애초 크게 주목을 못 받았고 황금종려상을 받자 이변의 수상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 (사진=DAUM 영화 사이트)

박찬욱 감독은 루벤의 이 작품을 칸에서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꼽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2022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과는 결이 달랐다.

두 작품만 보자면 심사위원들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한 영화를 선택했구나 싶었다.

공교로운 건 극 중 주인공 중 한 명인 '아야' 역할을 맡은 배우 찰비 딘(chalbi dean)이 칸 영화제 수상 3개월 만에 숨졌다는 거다.

외신에 따르면 공식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요절했다고 하는데 뒤늦게 영화 내용과 맞물려 참 기분이 이상했다.

루벤 외스틀룬드 (사진=DAUM 영화 사이트)

스퀘어, 포스 마쥬어, 슬픔의 삼각형 중 난 슬픔의 삼각형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세 영화의 엔딩은 요즘 예술영화의 트렌드인 듯한 '열린 결말'이다. 관객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슬픔의 삼각형은 몇 달 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감독상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아쉽게 수상하지 못했다.

영화 '플레이'의 한 장면 (사진=영화 캡처)

난 이후 루벤의 초기 작품인 플레이(The Play), 분별없는 행동(De Ofrivilliga)도 더 찾아봤다.

2011년작 플레이는 10대 폭력으로 본 스웨덴 이민 문제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이후 인종차별 문제로 한동안 논란이 됐다고 한다.

루벤의 다른 작품처럼 이 역시 불편하지만 해석과 이해는 각자의 몫이다.


기회가 된다면 루벤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고 소재가 정해졌다는 다음 작품도 벌써 기대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