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마련이다.
지난해 9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 생활 2개월 만에 이사를 했다.
굴마르스프란(Gullarspran) 역 주변에서 스톡홀름 북동쪽 섬인 리딩외로 살림살이를 전부 옮겨야 했다.
한국에서 들고 온 짐도 많은 데다 불과 2개월 사이 살림은 더 늘어나 있었다.
이삿짐센터를 부르자니 비용이나 절차 등이 신경 쓰여 직접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삿짐을 옮길 차였다.
당시엔 아직 퍼스널넘버(PN. 우리의 주민번호에 해당)가 나오지 않아 '쏘카' 같은 차량 대여 앱을 이용할 수 없었다.
결국 서클케이 주유소에서 차를 빌렸다. 신기하게도 주유소에서 렌터카 영업을 했다.
국제면허증을 보여주고 왜건 차량인 볼보 V90을 빌렸다.
스웨덴에서 첫 운전이라 무척 떨렸다.
인터넷으로 수차례 검색해 보고 대충 지리감을 익혔으나 긴장됐다.
스톡홀름은 외곽순환도로가 잘 돼 있어 갈 때는 복잡한 도심을 피해 30분 만에 순조롭게 이사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이 많아 몇 번 더 왕복해야 했다.
돌아올 땐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잘못 봤는지 외곽으로 빠지지 않고 도심 한복판 도로로 들어와 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돌아가는 게 더 힘든 상황. 정말 긴장됐다. 특히 보행자에 신경 쓰면서 서행했다.
내가 본 스웨덴 운전자처럼 횡단보도 근처에 행인이 오면 바로 멈췄고 지나간 뒤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에 집중하며 운전하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터널 입구가 나왔다.
빽빽한 도심 건물 아래로 사각 입구의 터널은 생소했다.
터널을 따라 몇백 미터를 달렸을까 주위가 환해지며 외부 도로가 나왔고 감라스탄과 쇠데르말름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넌 뒤 다시 다른 터널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이 두 번째 터널은 제법 길었다. 북에서 남으로 쇠데르말름을 직선으로 관통했다.
쇠데르말름을 빠져나온 차는 곧장 요하네쇼프다리(Johanneshovsbron)와 연결됐다.
도심 속 터널이라니 신기했다.
지하터널로 차량을 돌려 도심 교통체증을 줄이는 묘법 같았다.
문득 이 터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스톡홀름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오래된 도시다.
터널 위는 많은 건물, 광장, 공원 등이 이어졌다.
터널공사로 인한 엄청난 민원이 발생했을 것 같은데 그 아래로 어떻게 터널을 만든 건지 궁금했다.
스톡홀름은 터널의 도시인 건가?
한동안 잊고 살다가 스톡홀름 지하철 녹색 라인을 타고 슬루센(Slussen)과 감라스탄(Gamlastan) 사이를 지나가다가 문득 이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지하철이 슬루센에서 감라스탄으로 나오며 사방이 확 트인 지상 구간으로 이어졌다.
지하철 창문을 통해 차량이 오가는 다리를 봤는데 그 다리가 쇠데르말름으로 이어지는 터널과 연결돼 있었다.
터널 위엔 힐튼 호텔(Hilton Stockholm Slussen) 건물이 있었다.
평소에도 여길 지나며 '아 저기에 힐튼 호텔이 있었구나. 조식은 맛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번엔 다르게 보였다.
호텔 아래로 도대체 터널을 어떻게 뚫은 거야?
잊고 있던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도심 터널은 총 2개였다.
스톡홀름의 중심인 노르말름(Norrmalm)에 있는 클라라 터널(Klaratunneln)과 감라스탄과 연결되는 쇠데르말름을 관통하는 쇠데를레드 터널(Söderledtunneln)이었다.
클라라 터널은 Tegelbacken과 Sveavägen을 잇는 길이 500m의 터널과 Tegelbacken과 Mäster Samuelsgatan 사이 길이 850m의 터널 2개를 부르는 이름이다.
클라라터널은 500m짜리 터널이 1976년 10월, 850m짜리 터널은 1979년 6월에 각각 개통했다
쇠데를레드 터널(Söderledtunneln)은 스톡홀름 쇠데르말름(Södermalm)에 있는 센트럴 다리(Centralbron)와 요하네쇼프 다리(Johanneshovsbron)를 연결하는 터널이다.
북쪽 방향 터널 길이는 1천520m, 남쪽 방향 터널은 1천580m이다.
1984년 10월 개통했다.
예상대로 두 터널 모두 도심 통행량을 우회시킬 목적으로 건설됐다고 했다.
클라라 터널의 경우 지반이 약해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공법이 아니라 땅을 걷어낸 뒤 터널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터널이 들어설 지역의 주변 건물이 상당수 철거됐다.
건물이 철거된 시점인 1967년부터 공사가 진행돼 빠른 건 9년, 다른 터널은 12년 만에 완공됐다.
터널 개통 후 그 위에 차례로 건물을 세워 지금의 모습이 됐다.
터널 굴착이 아닌 터널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니 터널의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에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았다.
쇠데를레드 터널 건설 과정도 비슷했다.
하지만 클라라 터널에 비해 길이가 훨씬 길어 건설 과정에서 아픔도 있었다.
1930년대 초 쇠데르말름의 남북 방향 도로가 있었는데 스톡홀름 남쪽지역이 발전함에 따라 교통량을 수용하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기존 도로와 평행한 새 도로를 만들어 교통량을 분산시키기로 결정했고 1944년 쇠데르말름 북쪽에 길이 650m의 도로가 1945년 개설됐다.
이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거주자가 쫓겨나야 돼 큰 저항에 부딪히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 도로는 지상에서 깊이 10m 아래로 파내려 간 도랑 형태였다.
이후 쇠데르말름 남쪽 주거지역에 굴착공사가 시작돼 1964~1966년 길이 150m의 터널이 건설됐지만 연결도로가 없어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 쇠데르말름 남쪽에 터널이 뚫린 후 북쪽 도랑형태의 도로와 연결되며 비로소 하나의 긴 터널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쇠데를레드 터널은 남쪽 암석터널과 북쪽 콘크리트 터널이 섞인 구조였다.
1940년대 스톡홀름 정치인들이 30~40년 후 쇠데르말름을 관통하는 거대한 왕복차선 터널을 미리 염두에 두고 미리 북쪽 150m 도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이었던 셈이었다.
쇠데를레드 터널은 1960년대 이후 기술 발전으로 일부 구간은 굴착을 하기도 했지만 과거 도랑 형태로 건설된 도로를 터널로 만들고 그 위에 집과 건물을 지은 형태였다.
클라라 터널 역시 먼저 땅을 파고 터널을 건설한 후 그 위에 복개를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공법이었다.
스톡홀름 도심 터널의 비밀은 풀렸다.
그럼 힐튼 호텔은 어떻게 지어진 것일까.
스톡홀름 시는 많은 차들이 오가는 쇠데를레드 터널의 복잡한 기초 위에 들어서야 하는 건물에 대해 높은 미적, 도시 디자인, 기술적 품질을 요구했다.
1989년 이런 까다로운 건축 조건을 충족한 스카닉 호텔이 문을 열었다.
힐튼 호텔은 스카닉 호텔 건물을 인수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스톡홀름은 지하 터널을 뚫은 도시가 아니라 터널 위에 지어진 도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클라라 터널과 쇠데를레드 터널은 이전 도로와 터널 건설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철거된 건물을 복원했다는 의미도 있겠다.
클라라 터널은 2018년 측정된 결과에 따르면 하루 통행량이 4만2천대에 이른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시설 중 하나인 클라라 터널의 경우 지은 지 50년이 다 되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스톡홀름 시는 2024년부터 16개월간 클라라 터널을 전면 폐쇄하고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스톡홀름 차량 흐름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두 터널은 스톡홀름의 중추인 노르말름과 쇠데르말름을 연결하는 도로 운송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또 차량 통행을 우회시켜 도심에 차량을 줄이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접근성과 쾌적함을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도심 터널인데 만들어진 과정도 흥미로웠다.
나에겐 번잡한 도심을 달리다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에 나오는 마법의 통로처럼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해 준 색다른 터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