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1. 무기력4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원래 도전하고자 했던 것은 상업성을 염두에 둔 글쓰기였다. 나는 백수이고 당장 먹고사는 일이 걸린 문제인 만큼, 수익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웹 소설과 같은 장르문학을 생각했다. 판타지를 좋아하고, 인터넷 소설도 제법 읽어본 짬이 있는 나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아주 솔직히, 창작에 대한 고통은 둘째치고 여기저기 찍어내는 듯한 기성적 작품만큼은 나도 어렵잖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디 공모전에 도전해볼까, 한다면 내용은 무엇으로 할까?
떠오르는 아이디어야 있었지만, 너무 무수하고 모래알을 펼쳐놓듯 얕았다. 이런 컨셉이라면, 이런 캐릭터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세계관은 정해두고 이야기를 각각 진행하는 옴니버스 형식? 아, 어쩌지.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스토리라인과 주인공들은 자꾸 바뀌었고 진전이 없었다. 이런데 무슨 상업성을 바란다고! 이 부분은 조금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결국은 초심으로 돌아와 산문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기엔 자전적인 요소가 듬뿍 담겨있다. 내 생각과 판단은 내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결국 내 기억들을 수면 아래서 하나씩 건져 올리는 행위가 되리라.
카페에 앉아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쓰고 고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고 후련했다.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는 어딘가 꽉 막혀있는 구석이 있었다. 억지로 살을 붙였던 과제나 고통 속에 지어낸 '자소설', 격앙되어 적어 내려갔던 일기 혹은 단순히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는 글 따위가 그러했는데, 오늘의 글쓰기는 이와 다른 숨결이었다. 글을 쓰는 게 전혀 지겹지도 힘들지도 않게 느껴졌다. 마치 학생 시절 인터넷 소설을 아무도 모르게 써서 올릴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이 나서 하는 기분. 그런데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글 속에 나의 내면을 낱낱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마음속에, 기억 속에만 묻고 있던 일들을 글로 쓴다는 것은 수치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이를 극복하게 하는 발판이 되어준다. 주로 자려고 누워있을 때 떠오르는 것들. 원래라면 묻으려고 애쓰던 부끄러운 기억들. 이를 가려내 글로 써보자고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진 모르겠다. 나를 더욱더 좋은 사람으로 다듬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데, 이미 나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기 때문이다. 이를 글이라는 객관적인 수단으로 정제하는 건 더더욱 많은 에너지가 든다.
나는 잘 쓴 글보다 말하는 바가 뚜렷한 글을 쓰고 싶다. 더 이상 꿈에서 둥실거리지 않고 거친 현실에서 분명하게 자취를 남기고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잠에서 깨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글에 담자.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이라 스스로 포장하지 말자. 딱 그만큼의 공기로 다가오길 기대하면서 반성하고, 또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