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1. 무기력3
자기파괴적 삶에서 탈출하기
게으름에서 출발하였으나 결국 그 원인은 잠에 있었다. 그리고 과도한 수면이 낳은 무기력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발전이 없는 내 모습을 남과 비교하는 걸 견딜 수 없어서, 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파 꿈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깨어나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는 현실에 또 무기력해지는 것이 총체적 난국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혹은 꿈이라 믿는 것을 위해 열정적으로 무언갈 해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꼈다. 나는 왜 그렇지 못하지? 나는 왜 하고 싶은 게 없지. 하루하루 일상을 똑같이 보내면서, 점점 작고 단순하게 행복한 것에 치중하게 되었다. 당장 쾌감을 주는 맛있는 것들, 게임과 같은 중독적인 놀 거리, 인터넷에서 웃긴 걸 찾아보며 뒹구는 일 등. 생산적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없었다. 그저 ‘아, 이래선 안되는데’라는 생각만 할 뿐.
물론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또 부산에서 일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고, 또 연애도 하고, 그 와중 여행도 다녀왔다. 그런데 내 삶의 방향을 모르겠는 거다. 어떻게 살고자 하는 것은 대강 감을 잡았다. 그런데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장의 취업조차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잠시간의 행복과 위로는 그뿐임으로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늘 불확실하고, 안정되지 않고, 가난했다. 나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줄곧 깊은 우울에 빠져있었다. 나의 우울과 절망에서 청춘들이 겪는 그런 성장통을 읽을 수 있을까?
친구 K와 최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무기력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잠이 무기력의 표현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왜 무기력해지는가에 대해 고민을 함과 동시에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현시대 젊은이들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부단히 애써 노력해도 겨우 보통의 삶을 유지할 정도인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없으니 우리는 점차 무기력해졌다. 또한, 성공적인 경험의 부재와 실패와 좌절의 답습이 우리 삶의 의욕을 잃게 한다는 점이었다. 더 나아가고 살아 숨쉬기 위해서 우리에겐 실패할지라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과 부딪힐 용기가 필요했다.
천성이 게으르고 무기력에 길든 탓에 스스로 벌이는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지어본 기억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나는 다짐했다. 시작은 개인 만족적 산문 쓰기로. 동기는 11월, K가 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책 한번 내볼래?”
대학 친구들끼리 모여 떠난 대구 여행에서 독립책방 구경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어, 그래? 좋은데? 솔깃한 이야기였다. 글 쓰는 일에 능하지 않지만 어쨌든 국문과를 졸업했고, 과거에 꼭 ‘책벌레’니 ‘문학소녀’ 등으로 불려 본 탓인지 생에 한 번쯤은 책을 내볼까 하는 욕심은 있었다. 무엇에 대해서 쓸지에 대해 나눈 내용도 꽤 맘에 들었다. 그런 얘기가 오간 후에 ‘나 이제 글 쓴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놓고서 내가 한 건 겨우 메모장에 몇 자 조금 끄적여 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한달의 시간이 지나고 얘기를 먼저 꺼낸 K가 차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을 부탁했다. 그녀의 원고를 받아 읽어보고 소감을 전하기기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다.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공수표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말로만 다짐하고 짜둔 계획을 방치한 뒤 오는 자괴감은 제발 그만. 나는 나와 약속한 일을 차분히 해나가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의 무기력을 타파할 첫 번째 수단은 글쓰기다. 그렇게 하나씩 적어가기로 했다. 내가 집착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로부터의 탈출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