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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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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 Jan 12. 2019

2-2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낳은 것

탈출일기 2. 물욕2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낳은 것


 나는 근 몇 년간 총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부산에서 부산으로, 또 부산에서 양산으로, 양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서울로, 다시 양산으로. 역마살이 꼈는지, 그 뒤의 거처도 고정되지 않고 여기저기 오가는 일이 잦았다. 이처럼 이사를 자주 하면서 짐을 줄이는 감각이 커졌다. 첫 이사 땐 가장 먼저 안 입는 옷들을 버렸다. 어느 미니멀리즘 책에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고 했던가. 몇 년간 입지 않던 옷들, 앞으로도 입지 않을 옷들을 나눔 했다. 그러고도 남는 옷들은 헌 옷 수거 기사님을 불러서 소소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


 그다음은 정말로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생활 전반의 물품들로 식기구부터, 조립식 믹서, 가정용 빙수 기계(?) 따위도 있었다. 경비실에 허락을 구하고는 건물 현관 앞에 플라스틱 박스를 두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길 바라며 물건을 채워 두었다. 저녁에 상자를 수거하러 가보면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나에겐 필요 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필요한 물건이겠거니 생각하면 꽤 뿌듯한 일이었다. 그렇게 3년간 자취했던 방에서 짐을 빼는 날이 왔다. 그런데 이삿날 당일 나는 당황했다. 꽤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짐이 너무 크고 많았다. 살던 집이 빌트인으로 수납공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끄집어낸 ‘물건’의 부피와 무게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가진 물건이 이리도 많았던가?


정작 사 놓고 쓸모를 찾지 못하는 것들, 절실히 필요하다 느끼지 않지만 관성적으로 사들였던 물건들, 추억 운운하며 비좁은 공간에 꾸역꾸역 밀어두고 몇 년이고 찾지 않았던 선물 혹은 오래된 기록물들까지 전부 다 비워내고 싶었다. 가볍게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자유를 갈구하며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 서울에 입성했을 때 드디어 탈출했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의 통제와 물건의 억압에서 동시에 자유로워졌다고. 나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방에 내가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두고 싶었다. 내 손으로 만들고 채울 것이라고. 온전히 소중한 내 공간을 조성하고 싶었다.


 이때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인테리어’에 대한 감각이다. SNS 속 아늑하고 소소한 나만의 자취방을 표방하는 물건들은 무인양품이나 이케아 출신이 많았다. 소위 <킨포크> 감성이 유행하던 당시 나는 남들처럼 ‘아늑한’,’보여주기식’ 인테리어에 사로잡혀 있었다. 직접 조립한 가구에 대한 환상도 나를 부추겼다. 그리하여 서울 자취방은 반조립 형태로 비교적 저렴하지만 깔끔하게 제 기능을 하는 가구들로 꾸몄다. 이케아에서 흰색 상판과 흰색 다리로 조립한 책상을 들이고, 왕자행거에서 작은 흰색 행거를, 또 ‘흰색’이 테마인 방에 어울리는 반투명한 pp 수납장을 네 칸을 두었다. 마지막으로 DIY식 화장대와 두 칸짜리 서랍장을 사서 이틀에 걸쳐 끙끙거리며 조립했던 기억이 난다. 이 과정을 사진 찍어 인스타에 기록하며 자취방, 인테리어, 서울살이라는 태그도 달았다. 뿌듯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쓰임새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서랍형 거울이 달린 좌식 화장대는 무릎을 꿇고 봐야 하는 식으로 눈높이가 맞지 않아 불편했고, 거울은 방 조명과 각도가 맞지 않아 애써 들여다보아도 어두웠다. 거기다 4계절 의류를 행거 하나에 수납하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이맘때쯤 겉치레에 대한 소비가 줄기 시작하여 4칸짜리 수납장을 넘칠까 말까 하게 채울 정도론 수납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내 방의 형태는 내 손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만 치중했을 뿐 결국은 쓰임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던 내 욕심이 낳은 결과였다. 


 몇달 만에 또 이사하게 되었다. 물건은 크게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많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더 갖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니멀한 삶을 갖고 싶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 심플한 삶 등등의 태그를 타고 간결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염탐했다. 닮고 싶었다. 소박한 공간과 우러나오는 마음의 여유가 부러웠다. 버리는 운동 말고도 기본적인 태도 같은 것들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미니멀리스트들이 세운 몇 가지 규칙을 따라보고자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1) 하나를 사면 둘은 버린다. (2) 망설여지면 사지 않는다. (3)사고 싶은 물건은 1개월 정도 생각한다. 삶이 심플해진다는 것은 한정된 에너지를 낭비 없이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루뭉술한 단어들 말고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버리는 방법은 나에게 도움이 됐다. 여러 개 있는 물건 버리기, 일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 버리기. 남의 눈을 의식한 물건은 버리기, 마트를 ‘창고’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 가지러 간다고 생각하기, 싸다고 사지 말고 공짜라고 받지 말라는 마음가짐 등.


“완벽함이란 더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생텍쥐페리가 말했다. 


 나는 당장 그리고 몇 달간 필요한 생필품 외에는 안 쓰는 물건들을 처분하고 더 사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물건이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더할 나위 없는 상태에서 뺄 여지 없는 상태로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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