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2. 물욕3
소비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사람의 소비 감각을 교란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정말 내게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 없이 대문짝만하게 세일이라고 광고하면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날아드는 세일 정보 속에서 어떤 물건이 50% 이상 할인한다 치면 혹해서 사게 되고, 반대로 이 때문에 정말 필요한 물건을 정가에 주고 사는 것을 아까워한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내가 소유할 물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까? 게다가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딸려오는 포장재들을 보고 있자면 심히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테이프로 둘둘 싼 택배 상자 안엔 물건을 지키기 위한 뽁뽁이가 몇 겹이나 둘려 있는지. 그런데 이 물건마저 사실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아직도 물욕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경하고, 인스타를 구경하다 관심 있는 물건 관련 광고가 뜨면 클릭해 본다. 다이어리 꾸미기라든지, 센스있게 갖춰 입는 옷이라든지, 깔끔한 식기구들, 감각적인 인테리어 제품들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내가 돈만 있었어도…’라고 경제적 부족함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가끔은 소확행이라며 진짜 소비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무소유까진 아니라도 현명하게 소비하고 싶은데 나는 아직도 많이 휘둘리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친 경험과 고민 끝에 이제 분명해진 점이 있다. 과한 겉치레보다는 쓰임과 기능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필요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다.
최근 가방 하나를 중고사이트에 팔았다. 과거의 내가 큰맘 먹고 사서 아끼던 것인데, 이제는 내게 큰 가치를 주지 못하는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소소한 수익의 기쁨은 곧장 소비로 이어졌다. 바로 다음 날에 친구와 만나려 들린 독립책방에서 책 한 권을 산 것이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음식이나 음료 따위가 아닌 한 권의 책이 내 손에 남았다. 조금 고민해본다. 이것은 소비인가, 투자인가? 잠깐의 기분전환으로 책을 사는 행위에 심취한 것인지. 가치 있는 소비로써 ‘책’으로 망라되는 지식에의 투자인지. 나는 물론 후자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그러니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물론 음식보다 책이 가치 있느냐 묻는다면 굳이 둘 사이에 우열을 나눌 수는 없겠다. 다만 어떤 사정일지 모르지만 좁고 찾기 힘든 골목 안에 책방을 열고, 대형 서점에선 보기 힘든 독립출판 책들을 들여놓는 이 협소한 공간에서 내가 집어 든 책 한 권으로의 소비가, 다시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소 낭만적일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소비란 그런 것이다. 약자에 대한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매하는 것, 이왕이면 사회적 가치와 친환경을 표방하는 회사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들 말이다.
물건을 싸기 위한 포장재는 그 짧은 생을 다하면 부담스러운 쓰레기가 된다. 고민 없이 구매한 물건들은 그만큼 공간을 차지하고 마음에 무게를 더한다. 인간은 자기 분수만큼 가져야 한다. 이건 자기가 감당할 만큼, 본인의 정리 능력만큼의 물건을 가져야 한다는 소리다. 본인이 소유할 물건이 줄어들면 그 물건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 있는 소비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면 좋겠다.
아늑하고 가득 채운 내 것에 대한 집착을 미니멀로 줄였다.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게 되니 온전히 쓰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에게 이 물건이 오게 될지도. 고심해서 산 물건들이 적절한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때 매우 뿌듯하다.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생각해본다. 좋은 소비란 무엇인가? 어떤 소비가 가치 있고 생산적인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 자원 낭비를 줄이는 소비, 혹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소비를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한 푼어치라도 생산적인, 가치 있는 소비를 하고 있을까. 내가 하는 소비가 나에게 그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수단으로써의 소비, 생산적인 소비, 가치 있는 소비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