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1. 무기력1
게으름의 역사
나는 게으른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미성숙한 인간임을 주장하듯 약속 시각을 잘 지키지 못하였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미루는 일이 많았다. 학창 시절 잠이 많은 나는 오전 약속에 늦기 일쑤였고, 그만큼 당일 깨뜨린 약속도 부지기수라 친구들의 원망을 한몸에 들었다. 학교 과제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다 급하게 마감하느라 엉망으로 제출하기도 하고, 아예 포기하고 내지 않기도 했다. ‘포기하면 편해’라는 자포자기 식이었다. 웃기는 게 딴에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터라 과제물이 ‘완벽’한 것에 집착했다. 그러나 내 능력 밖이란 생각이 들어 완성하지 못하겠다 싶으니 포기하고. 쉬이 포기한 나와는 달리 어떻게든 완성해서 제출한 친구를 부러움의 눈길로 보는 일이 잦았다. 변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게으르게 길든 습관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초반, 나는 아직 미숙한 티를 벗지 못했다. 위와 같은 나쁜 습관조차 고쳐지기 전이었다. 새내기들의 첫 교내활동인 ‘새로 배움터(줄여서 새터)’에 가는 날이었다. 오티에서 친해진 동기와 나는 버스 옆자리에 앉기로 약속했다. 출발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밤새 스마트폰으로 새터 후기와 대학 생활에 대한 인터넷 글을 읽으며 나는 오래간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당일 해가 밝았는데, 그날의 일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흑역사가 되었다. 집도 먼 내가 아침잠에 심취하여 결국 출발하는 버스를 타지 못한 것이다. 내 동기는 쓸쓸히 혼자 앉아서 갔다. 나에게 수많은 문자 메시지를 남기면서…. 이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러움에 몸이 배배 꼬이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자면서 다 포기하는 습관’을 대학 첫 1학기를 다니면서까지 고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왕복 세시간 반 거리에서 살던 내가 자취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독립적으로 살고자 했던 나는 월세를 지원받는 대신에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벌고 싶었다. 그리하여 성인이 되고서 첫 아르바이트를 학교 주변 작은 마트에서 시작했다. 당시는 최저임금이니 근로계약서니 이런저런 정보에 대해서 무지했던 시기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이력서 종이에 졸업 고등학교와 재학 중인 대학의 이름만 대강 써넣은 걸 들고 면접을 보러 갔다. 마트 캐셔직이었다.
시급이나 월급에 대한 이야기 없이 바로 일을 시작했다. 불안했지만 같이 일하는 언니가 매달 n일에 일한 만큼의 돈이 들어온다고 했다. 주중 오후 네다섯 시부터 열 시, 열한 시까지 일을 했다. 주말에도 하루 이상 일했다. 타고난 저질 체력이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단함에 늦잠을 자느라 점점 오전 수업을 빼먹게 되었다. 9시에 시작하는 1교시는 포기했다. 점심이 가까워지면 일어나서 겨우 오후수업을 듣고 시간에 쫓겨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3주 정도 일했을까, 첫 월급을 받았는데 당시의 시급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따져보니 이런 동네마트에선 ‘원래’ 최저임금을 못 준다고 하는 것이다. 어딘들 똑같다는 식의 태도였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즈음 기말고사가 찾아왔다. 출석률도 엉망이고 공부도 하지 못한 내가 좋은 점수를 받으리란 요원한 일이다. 덕분에 미래의 내가 재수강으로 학점을 메꾸느라 애먹었지만.
입학 시 성적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반면 내 첫 학기 학점은 처참했다. 우와. 1점대라니! 황망했으나 내가 저지른 일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학교 포털에 내 아이디로 접속해 성적을 확인하시고는 하늘에 벼락이 쳤다. 본가에 가지 않고 여름방학 기간 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깃집에서 서빙을 돕는 일이었다. 가끔 지각했지만 주인 내외에게 꽤 귀염받는 알바생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는 끝났다. 그 이후 바쁠 때 대타를 뛰어주기도 했는데. (또 그놈의 잠! 잠이 뭔지)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자면서 약속한 시각에 못 가게 된 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어쩜 이리 무책임했을까. 그땐 어렸기에 그랬다는 말로는 지금의 내가 너무도 부끄럽다.
인간은 대가를 치르고서야 배우는 법이다. 나 또한 그만큼의 책임을 다하는 일을 하고서야(정확히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이어서야) 시간개념을 지킬 수 있었다. 대학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때 통근에 왕복 두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원생도 아니고 돈을 받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늦었다고 “아 학원 안 가!” 할 수가 있나? 친구와의 약속은 잠수타고 후에 사과한다 쳐도 이건 돈이 걸린 일인데. 그리고 당시로써는 가난한 학생에게 꽤 짭짤한 급여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해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몇 번의 지각에 원장님께 불려 혼나가면서 출근 전 5분 10분마다 알람을 맞추었고 조금이라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일년이란 시간을 거치니 지금은 반대로 일종의 시간강박이 생겼다. 늦을까 초조한 마음에 항상 도착 시간에서 30분은 여유를 잡고 출발하는 습관이 든 것이다. 약속과 일에서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변화를 맞이했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아직도 나는 잠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