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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Dec 12. 2023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_들판에 서서

# 11 _ 들판에 서서

  일주일 한두 번은 밤샘 전화상담을 하고 새벽 6시에 상담실을 나섭니다. 지하철을 탈 때부터 귀에 이어폰을 꽂습니다. 즐겨 듣는 ‘레인보우’ 기독교방송. 청량리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시간에 맞춰 이른 기차에 오릅니다. 기찬 안에서 내릴 때까지 음악이 귓속을, 마음속을 부드럽게 간지럽힙니다. 음악을 통해 피로를 풀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기운을 얻지요. 

 7시부터는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프로그램. ‘함께’라는 단어가 없어 더 정겹게 느껴집니다. 음악과 더불어 소개되는 청자들의 사연들이 때로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 세상 사는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언제 들어도 따뜻합니다.


 사연 가운데 많은 것들이 “지금 너무나 편하게 음악을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배웅하고 햇살 비치는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월차를 얻어 이불 속에서 게으름피우며 듣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거실에 벌렁 누워 듣는다, 지구 반대편으로 해외 출장 와서 힘든 일을 마치고 샤워하며 듣는 감미로운 음악,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인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으며 듣는다...

 듣고 있는 환경에 따라 음악이 더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들리는 건 당연합니다.


 기차가 목적지에 닿는 시각은 프로그램 끝나기 25분 전쯤. 가방을 어깨에 메고,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을 낀 채 버스 정류장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10분 거리에 있는 ‘버덩말’ 정류장. 여기서 시골 버스를 탑니다.

 가는 길에 전천(前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앞뜰내 다리를 지나고, 옆으로 넓은 들판을 보게 됩니다. 남들은 베란다에서, 침대 속에서. 샤워하며 듣는 음악이 좋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바로 이 순간,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며 듣는 음악이 제일 좋습니다. 

 겨울의 쓸쓸한 빈 들판도 좋고, 눈이 펑펑 내릴 때는 더 좋고, 막 모심기가 끝나 아침 바람에 일렁이는, 가녀린 어린 모들의 몸짓을 보는 것도 좋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먹장구름을 올려다보는 풍경 또한 좋습니다. 지난봄에는 군청에서 논 주인들을 설득해 벼 대신 메밀을 심어 하얀 꽃이 장관을 이루었지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때로는 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이 음악을 듣는 심신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끔은 고등학교 때 들었던 노래가 나와 가던 길을 멈추게 만듭니다. 두 시간에 한 대꼴로 오는 버스가 기다리지 않고 가버려도 음악이 좋아 마냥 서서 들판을 바라봅니다. 그날따라 들판은 특별히 볼 것이 없는데도(때로는 볼 것 없는 게 더 좋지만) 말입니다.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가 흘러나옵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 거예요.”

 이를 줄여 이 방송 애청자들은 스스로 ‘오하당’ 클럽이라고 합니다. 오하당! 그래, 오늘도 내것이다!     

 

 니체 씨, 당신은 언제나 오늘 하루를 ‘내것’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당신의 글이, 당신의 철학이 그렇게 다가와요.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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