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13 / 등짝을 때려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흔셋인 남자. 그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우연히 알게 된 부모님과 자신의 혈액형. 짧은 지식으로 따져보니 부모님에게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 그때부터 고아라는 생각을 했고, 급기야 나중에 버림받느니 빨리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게 초등학교 6학년 봄이었어요. 나중에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걸 알았지만 죽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더러 이웃집 어른들이 “네 아버지가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는데 잘못 안 혈액형 지식으로 새겨진 죽음의 각인은 뇌리에 깊게 박혀 삶을 휘저었다.
그의 생각의 마지막은 언제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성적이 나쁘면 ‘열심히 공부하자’가 아니라 ‘학원에 다니며 돈을 쓰느니 빨리 죽자. 그게 부모님과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이런 식.
감기에 걸려도 결론은 죽자, 누구에게 야단을 맞아도 결론은 죽자, 직장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출근할 때 버스를 놓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가 입술을 데어도, 식사하다가 밥알을 흘려도, 심지어 칭찬을 받아도 ‘저 사람이 언젠가 나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더 할 거다’는 생각에 결국 ‘죽자’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죽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를 제대로 사귀고 결혼할 꿈을 갖겠어요. 그런 걸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결론은 또…”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이 넘쳤다. 죽으려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명쾌하다고 믿고 있으니까. 그가 신이 나서(?) 조목조목 말하는 죽을 이유를 듣다보면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사람은 언젠가 죽으니까 굳이 일찍 죽으려고 서두를 일도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죽지 않으려고 발둥을 친다고 해서 더 사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안다. 다 아는 데 생각의 끝은 항상 ‘죽자’에 다다르니 그 자신도 정말 죽겠단다.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강조한다.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나치 수용소에서 하루하루 죽음의 경계를 넘어 살아남은 경험을 가지고 내린 결론이다. 이 이론을 확장한 것이 ‘의미요법’인데, 이를 사용할 때는 ‘당신은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나저나 이 친구. 당신라면 등짝을 한 대 갈겨주겠는가, 아니면 힘내라고 토닥여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