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15 / 이해받고 싶은 우리 모두
중3 여학생. 어릴 때부터 화목하지 못한 가정 속에서 자랐다. 또렷한 기억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는 것을 오빠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장면.
“오빠 뭐 해”
다가가 함께 봤던 그 슬픈 기억.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는 언제나 부재중이었어요.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엄마와 싸웠지요. 일방적으로 엄마가 맞는 싸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요. 엄마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에 엄마는 술을 마셨고 아버지는 담배를 물고 컴퓨터 게임을 했어요.”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그러니까 엄마도 낮에는 언제나 부재중이었던 것.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걔네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가 봐’라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예민한 아이. 그래서 늘 깊게 생각하고 상처도 쉽게 받았다. 친구들에게 소외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게 초등학교 1학년이고,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을 받으면 너무 괴로워했다.
“그때부터 자해를 했고, 돈이 생기자 첫 문신을 했어요.”
자해 흉터는 엄마가 무심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문신은 어느 날 함께 목욕을 갔다가 들켰다. 은밀한 곳에 했던 것. 목욕탕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들킬 줄 알았지만 굳이 숨길 일도 아니란 생각을 했다.
엄마가 이해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은 찜질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함께 죽자며 차를 거칠게 몰았고, 겁에 질린 그녀는 울면서 엄마에게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울부짖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지요? 암튼 그 후 죽는 대신 문신을 보란 듯이 몸 여기저기에 새기기 시작했어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의 영어 문구, 친했던 남친 이름의 이니셜 세 개, 멋지다고 생각한 노래 가사 등.
하면 할수록 엄마는 펄펄 뛰었고 아버지는 사람 취급 안 하는 걸도 대신했다.
“단 한 번이라도 네 행동을 이해한다고 했으면 멈췄을 거예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담담하게 말하는 중3.
이번에는 22세 여성.
“살이 좀 찐 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자꾸 다이어트를 강요하십니다. 저도 생각이 있는 성인입니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돼지 같아서 어떡하냐는 둥, 그만 좀 먹으라는 둥 스트레스를 받는 말만 합니다. 제가 왜 살찌는지 이해 좀 해줬으면 해요.”
지금 전문대 다니고 있는데 학교 들어갈 때부터 취직 걱정을 했다. 뭘 하려고 해도 4년제 졸업자도 취직하기 힘든 세상인데 전문대 졸업장 가지고 잘 될까, 그런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먹는 거에 손이 갔고, 그런 자신이 미워서 또 먹었다. 운동을 하면 된다는 걸 알지만 그게 몸이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또 먹는다. 이런 고민에 휩싸여서 먹고 또 먹는데 부모는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아서 짜증이 난다. 그래서 또, 또 먹는다.
잘하면 잘한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다. 세상이, 가족이 이해의 눈길을 주지 않은데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헌데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 수준까지 이해해야 사용할 수 있는 말일까? 다 들어주는 것이 이해하는 건 아니다. 하는 말마다, 하는 행동마다 고개를 끄덕여준다고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의 태도다.” 저명한 상담가 C. 로저스의 말이다.
우리가 타인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어림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로저스의 말에 조금은 안도가 된다.
자식들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태도만 가져도 등짝을 수십 대 때리는 것보다 낫다. 그런데 세상은 이해보다 공격용 혀를 사용하고, 악풀을 마구 쏘아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