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 Pul Mar 07. 2022

55.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장아찌

-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55.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장아찌    

 

 약간 톡톡 튀는 목소리. 20대, 여성.

 “제가요, 요즘 조금 힘들기는 해요. 그래도 별 이상은 없는데 이상하게 냉장고에 넣어둔 장아찌를 들지 못하겠어요. 무거워서. 들 수가 없어요.”

 이게 뭔 말인지 싶어서 다시 물어도 똑같은 대답.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게 자랐다고 했다. 왕따 당한 적 없고 부모에게 심하게 맞은 적은 없다. 

 “아버지가 가끔 주사를 부리기는 해도 그런 건 다른 가정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마찬가지가 아니라고 해주려다가 가만 듣는다.

 “남자 친구를 사귀다가 내 쪽에서 찬 적은 있어도 차인 적은 없어요. 뭐든지 남보다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해도 처지지도 않았어요. 취업도 서너 번 도전해서 바로 붙었고요.”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있지만 그 정도는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직장 3년 차. 나름 스트레스 푸는 방법도 알고 살찌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대단한 미모도 아니지만. 통통 튀는 목소리는 오히려 명랑한 성격 같이 느껴진다.

 “서너 달 전부터 모든 게 시들해졌어요. 힘든 건 딱히 없는데 그냥 자꾸 힘이 빠져요. 의욕 상실? 글쎄요, 목표한 대로 잘 가고 있으니 의욕 상실이라고 하기도 뭣하네요.”

 집을 나와 따로 살고 있는 그. 반려동물은 없다.

 “싱크대에 설거지할 것이 잔뜩 쌓인 거 아닌가요?”

 모든 것이 시답잖고 의욕이 없다니 슬쩍 던져본 질문인데 펄쩍 뛴다.

 “그런 거 질색이에요. 먹은 거는 바로 치우고 빨래도 밀리는 법이 없어요. 청소도 마찬가지.  지저분한 거는 싫어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그러니까 한 달 전쯤 갑자기 어묵이 먹고 싶어서 슈퍼에 달려가 어묵을 사서 맛있게 끓였지요. 그런데 또 갑자기 먹기 싫어지는 거예요. 그냥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며칠 뒤에 보니까 곰팡이가 피었어요. 치우려고 하는데 그게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어요. 할 수 없이 그냥 두었는데 며칠 전에 아까 말한 대로 장아찌가 먹고 싶어서 그걸 담갔다가 어제 꺼내 먹으려고 했는데 들 수가 없었어요. 무거워서. 오늘 아침에 다시 꺼내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무거워서 들 수가 없고, 조금 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무리 힘을 줘도 마찬가지예요. 밑에 들러붙은 것도 아니고, 뭐가 문제죠? 다른 건 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삶에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54. 마지막 듣고 싶은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