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54. 마지막 듣고 싶은 말
겨울, 한강의 여러 다리에 설치된 긴급 전화의 밤 당번으로 심야 전화를 지키는 날. 자정이 지나도록 벨 한 번 울리지 않는 조용한 밤. 바람이 세고 추운 날씨. 이런 날이라고 전화가 없지 않으나 왠지 그날은 조용히 지나갈 것만 같은 밤. 새벽 한 시가 지나면서 마음이 풀어지려는 순간 벨리 울린다. 언제나 그렇지만 벨이 울리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끝이 선다.
이쪽에서 인사말을 건네기도 전에 딱딱한 어조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딱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 말 한마디만 듣고 뛰어내릴 겁니다.”
급할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고, 상대에게도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한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
“묻지 말라고 했잖아요. 급해요. 딱 한마디만!”
남자. 성마른 목소리 톤. 서른 중반? 손가락으로 119 출동 요청 보턴을 누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급히 굴린다. 마지막 말? 뭐라고 해야 하나? 상대는 시간을 끌 여지를 주지 않는다.
“무슨 말을 듣고 싶으세요?”
“묻지 마시고, 딱 한마디만! 이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말.”
부모가 살아있는지, 부모에게 상처받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님을 생각하세요” 할 수도 없고 결혼 여부도 모르면서 “아내나 자식을 생각하세요” 할 수도 없다. “힘내라”는 말은 너무 무기력하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남자끼리 “사랑합니다” 하기도 그렇고, “춥지 않아요?” “식사는 잘하고 있나요?” 묻기도 그렇다.
“끊겠습니다.”
“기다리세요.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랑합니다’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남자는 움찔하는 기색이더니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때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그 남자라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