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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Nov 20. 2022

기억수퍼 – 20 죽은 자가 깨어날까 봐 회다지하는 것


 매장지는 지관이 잡는다. 고인이 생전에 잡아 놓는 경우도 있다. 수맥이 있는 곳이나 큰 나무 근처, 풀이 우거진 곳은 피한다. 선산에 모신다면 위치에 따른 서열이 있으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 묘택(墓宅)이라는 말이 있듯이 묏자리는 집터와 마찬가지로 햇볕이 잘 들고 남향이 좋다. 

 

 관이 들어갈 자리를 광중(壙中)이라 한다. 예전엔 삽과 곡괭이로 산역꾼이 힘들여 팠으나 요즘은 굴삭기가 대신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장비 다루는 기술이 워낙 뛰어나서 깨끗하게, 직사각형으로 도려내듯이 파낸다. 묏자리 파기 전에 산신에게 간단한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후토제(后土祭)라 한다. 후(后)는 제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산신을 일컫는다.     

 

 관을 묻을 작업을 마치면 하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도 지관이 생년월일을 따져 정한다. 태어나는 시간을 하늘이 정해주었다면 땅에 들어가는 시간도 하늘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

 매장 방식은 지방에 따라, 집안 전통에 따라 다르다. 어떤 곳은 관째 묻고 어떤 곳은 파관하여 시신만 매장한다. 이때는 먼저 흙바닥에 창호지를 깐다.     

 관을 광중에 내린 후 명정을 펼쳐 덮고 그 위에 횡대를 덮는다. 맏상주가 “취토합니다” 고한 후 첫 삽을 조심스럽게 횡대 위에 뿌린다. 이어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흙을 조금씩 넣는다. 가족들의 취토가 끝나면 기다리고 있던 회다지꾼들이 회가 섞인 흙을 넣고 발과 굵은 나뭇가지 끝으로 단단하게 다진다. 이를 회다지라 한다. 회를 섞는 이유는 눈비나 벌레가 들어가거나 혹시나 짐승들이 파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회를 굳혀 철벽 방어하는 것이다.          

 

 횡성 정금리에는 회다지 절차와 이때 부르는 노동요 즉 회다지소리가 잘 보존되어 있다. 

 회다지는 6명의 회다지꾼들이 선소리꾼의 노래에 맞춰 후렴을 받으며 그에 맞는 동작으로 평토가 될 때까지 한다. 크게 네 동작으로 구분되는데, 아무런 동작을 안 하고 소리만을 받는 ‘고하는 소리’, 느린 노래에 맞추는 청회(請灰), 중간 빠르기의 연회(宴灰), 빠르게 부르는 노래에 맞춘 빠른 동작의 방회(傍灰)가 바로 그것이다.

 흙을 한 번 덮고 네 동작을 하는데 이를 ‘쾌’라 한다. 회다지는 한 쾌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보통 세 쾌를 하며, 때로는 5쾌, 7쾌를 하며 호상에 부잣집이라면 9쾌까지도 한다. 횟수는 홀수여야 한다. 회다지를 할 때 묘 주변에 쳐놓은 새끼줄에 상주들이 회다지를 잘해달라고 지폐를 꽂아준다. 사람 떠나보내는 데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든다.     

 

 벌레가 들지 말라고 회를 뿌려 굳힌다고? 천만에! 죽은 사람이 깨어나 흙을 헤치고 살아나올까 봐 그러는 것. 죽은 자를 영원히 죽게 하는 것. 이승을 철저하게 떠나게 하는 것. 그래서 불구덩이에 집어넣고 가루로 만드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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