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2020. 8. 8. 토 / 235 days
휴대전화기의 검은 화면이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꺼졌어. 앱 푸시 알림이 있거나 카카오톡 채팅창에 누군가 글을 썼나 봐. 잠든 다인이가 깰까 조심스레 확인해보니 익숙한 전화번호에서 문자가 도착해있었어.
- 상품을 집 앞에 보관 전달 하...
택배기사님이셨구나.
토요일에도 택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네. 한 때 택배는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에는 오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거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급히 쓸 물건이라면 인터넷 쇼핑을 하기보다 시내에 나가서 사고 그랬어.
그렇다고 토요일을 쉬는 요일로 기억하고 있냐면 그렇지만도 않아. 엄마는 학교 다닐 때 토요일도 등교했거든. 월화수목금요일까지는 6교시 수업을 꼬박 듣고 토요일은 그나마 4교시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왔어. 요즘은 놀토라고 하면 tvN의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을 떠올리겠지만 예전에는 노는 토요일을 줄여 놀토라고 불렀단다. 엄마보다 조금 늦게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토요일에 격주로 학교를 갔다 쉬었다 했기 때문이야.
지금은 주 5일제가 많이 정착되어서 토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외식을 하고, 극장에 가고. 쉬러 가는 거. 즐기러 가는 거.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린 누군가의 일터에 휴식을 취하러 가고 있던 거야. 주말 근무를 선택한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 집에서 한정된 즐거움밖에 누리지 못했겠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직업을 갖는 거지만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어.
택배기사님이 가져다주신 물건에 대한 이야기도 안 할 수 없지. OB베어가 그려진 타프와 튜브형 아이스버킷이 도착했어. 어제 충동적으로 사 왔던 투썸플레이스의 캠핑 테이블과 비슷한 맥락의 물건이라 사는걸 열두 번 고민했는데 안 사곤 못 배기겠더라. 기왕 산거 비가 그치면 잘 써봐야지. 야외에서 다인이와 함께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돼. 그때쯤이면 넘어지지 않고 잘 앉아 있으려나? 잡고 서기를 하고, 잡고 옆으로 걷기도 하는 아기가 앉아있는 건 썩 재주가 없다니 그것도 어찌 보면 재주라고 할 수 있겠다.
앉기도 전에 침대 난간을 잡고 선 탓일까. 앉는 자세를 할 때는 여전히 우연히 앉거나 - 예를 들면 잡고 서있다가 손을 놓쳐 풀썩 주저앉는다던가 - 엄마가 앉혀줘야 잠시나마 앉아서 손을 탐색하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우리 다인이. 언제쯤이면 스스로 기어 다니다가 앉을 수 있을지 엄마는 궁금해. 다른 사람들의 육아일기를 보면 앉기를 먼저 하는 것 같은데 우리 아가는 허리 힘보다 팔힘이 좋았는지 잡고 선 후에 앉았지. 처음엔 잡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보이더니 이제는 다리에 힘이 좋아졌는지 잡고 서서 엉덩이춤을 들썩들썩 추기도 하고, 한 손을 떼고 서있다가 몸을 빙글 돌려 등을 벽에 기대기도 하니 하루 종일 너를 보고 있자면 지겨울 새가 없어.
토요일. 월화수목금요일과 다름없던 토요일은 이제 저 날들보다 일요일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되었어. 다인이를 낳고 난 후의 엄마의 삶도 토요일이 바뀌듯 바뀐 것 같아. 잃어버린 것도 많고 아쉽지만, 그것들을 놓은걸 후회하지는 않아. 소중한 우리 다인이와 만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