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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7. 2021

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육아(育兒)가 아니라 육아(育我)를 하고 있습니다.

 육아(育兒) : 어린아이를 기름


육아는 부모에게 무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오늘도 아이와 하루 종일 티격태격 원치 않았던 전쟁은 계속된다. 마치 저 아이는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 밤에 잠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일부터는 정말 아이와 아무 일 없이 지내야지. 야단치지 말고 아이 마음을 읽어주고 싸우지도 말아야지.’라는 다부진 결심을 해보지만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이 결심이 무색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매번 결심하고 매번 좌절한다.  

사진 : 픽사 베이


우리 집에도 유독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있다. 나와 제일 많이 다투고 날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밀어 넣을 때가 많다. 여기서 더 화가 나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자유분방함이 어딘가 모르게 날 닮았다는 것이다.
기질이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르게 가지고 태어나는 ‘생물학적 반응 양식’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이 아이는 그저 날 힘들게 하는 아이였다. ‘자유분방한 개구쟁이’ 기질을 가진 아이. 아이들은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 너무도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기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두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정말 다른 아이들의 성향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아무리 다둥이 엄마여도 아이마다 기질이 천차만별이니 첫째 아이 키울 때의 양육 경험이 둘째 땐 무용했다. 언제나 새로운 아이 앞에서 나는 생초보 엄마가 되었다.

큰아이는 야무지고 뭐든지 스스로 하는 기질을 타고났다면, 이제 여섯 살이 된 둘째는 큰아이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정말 말 안 듣는 자유분방한 아이다. 주위 모든 상황이나 상대방 기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요즘 둘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이 말이다. 셋째는 주위 사람들이 ‘애 어른’이라고 부를 정도로 차분하고 야무진 아이다. 조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어른들이 보시기에 심히 사랑스러운 아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늘 두 부류로 분류하곤 했다. 첫째와 셋째는 말 잘 듣는 다루기 쉬운 아이, 둘째는 다루기 힘든 까다로운 아이로 말이다. 심지어는 야무진 첫째와 셋째 사이 중간에 끼어있는 둘째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왜 저렇게 ‘나쁜 아이’로 태어났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이 성격을 바꿔보려고 애썼다. 아이의 성격을 비난하고 너는 왜 첫째와 셋째처럼 못하냐고 불평하고 야단치는 날들이 많았다.  

기질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차이점을 온전히 수용하고 이해하기는커녕 둘째의 모든 성격들이 단점처럼 부각되어 나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책과 강연을 통해 ‘기질’에 대해 알게 되면서 둘째에게 윽박지르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둘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세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거북이한테 백날 너는 왜 이렇게 느려 터졌다고 아무리 야단치고 훈계해도 소용없다. 거북이는 그렇게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살도록 타고 태어난 것이다. 다만, 부모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엉금엉금 걸어도 꾸준히 끝까지 하면 된다면 늘 용기를 북돋워 주고 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우리 애는 요즘 말을 진짜 안 들어요.”  

부모 강연에서 만난 강사의 요즘 아이 키우면서 뭐가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했다.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 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아이 입장은 배려되지 않았다. 아이도 그냥 싫은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는 엄마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엄마를 폭발 직전까지 가게 만들기도 한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내가 이 정도로 하기 싫다고 했으면 엄마도 좀 내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엄마도 내 말을 안 듣는 건 마찬가지예요.” 아이의 이 마음을 듣고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엄마인 내가 하는 말이 다 옳고 합리적이며 아이는 이유도 없이 억지를 피우거나 떼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 속에서 아이를 제압해 내 뜻대로 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날도 나는 천근만근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딱 누워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야속한 시곗바늘은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받아서 집으로 올라왔다. 얼른 씻기고 밥 먹이고 뒷정리하고 누워서 쉬고만 싶었다.

“얘들아, 미안한데 오늘 엄마 몸이 조금 힘들어서 그러는데, 우리 얼른 씻고 놀자. 어서 옷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이번에도 둘째가 문제다. 첫째와 셋째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웃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런데 둘째는 방 한 구석에서 변신 로봇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때부터 둘째가 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민혁아, 어서 씻고 놀자. 얼른 옷 벗어.”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다. 일단 나머지 두 아이만 데리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두 아이를 씻기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민혁이를 재촉했다. “민혁아, 엄마 힘들다고! 얼른 들어오지 못해! 민혁아! 민혁아!!” 민혁이를 부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짜증스러움이 섞이기 시작했다. 민혁이는 이런 엄마 감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변신 로봇만 만지고 있었다. 문틈으로 아직도 그러고 있는 민혁이 모습을 본 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민혁이에게 달려들었다. 등을 후려치며 “야 신민혁! 엄마가 몇 번을 말했어? 엄마가 씻고 놀자고 했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두 아이를 씻기러 목욕탕에 들어서는데 민혁이가 나를 뒤 따라와서 나를 때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화가 폭발했다. 근데 그 올라온 감정대로 행동하면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나 스스로도 무서워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왜 이렇게 저 아이는 내 말도 안 듣고 나를 이렇게 짜증 나게 하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는데 살금살금 내 눈치를 보며 옆으로 다가온 아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부터 이 변신 로봇 생각이 났거든. 그래서 얼른 이거만 로봇으로 변신시키고 목욕탕에 들어가려고 했거든. 근데 엄마가 자꾸 부르면서 짜증을 내니까 나도 너무 화가 났어. 조금만 기다려주면 될 것을 엄마가 다그치기만 하고.”

아이도 생각하는 게 다 있었다. 내가 아이 마음을 조금만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좀 있었다면 그렇게 아이 등을 후려치진 않았을 것을. 후회와 자책이 마음을 채웠다.  


 아이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부터 내고 잘못을 지적하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적과 동시에 행동의 즉각 변화를 기대하고는 행동의 변화가 없으면 나는 '또 시작이네.'라며 비난하고 질책했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쩜 그렇게 눈에 다 거슬리고 말은 어떻게 그렇게 안 듣는지 하루에도 울화통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다 가지고 논 장난감은 정리하라고 했지?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너 때문에 진짜 지친다, 지쳐.”라고 말하곤 했다. 비난 가득한 이 말을 내뱉은 순간, 아이가 장난감을 치우기는커녕 아이와 나의 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내 안에서는 분노가 들끓기 시작한다.

아이가 엄마로부터 ‘너 때문에 엄마가 힘들고 지친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의 마음이 어떨까? ‘내가 이 정도로 말했으면 들어줄 만도 한데 왜 저 아이는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잘못과 책임을 아이한테 전가했다. 늘 내 마음에서는 아이 때문에 힘들고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피곤하다는 생각이 일었다.
일부러 부모 속을 썩이려는 아이는 없다는 말이다. 단지 아이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하고 싶은 행동을 했을 뿐이다. 오늘도 소리 지르고 잠자리에서는 눈물짓는 엄마지만 엄마도 아이와 함께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육아가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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