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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5. 2021

이거야 말로 동상이몽

내 마음 같지 않은 네 마음

동상이몽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각 딴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


제목을 동상이몽으로 바꿔놓고 보니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같이 행동하지도 않았는데? 이 어휘가 내가 쓴 글의 제목으로 딱 들어맞지 않음을 직감한다. 대체할만한 다른 어휘를 찾지 못하니 일단 그냥 두기로 한다.





치열한 워킹맘으로 살 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아이들 양육에 집중하는 요즘, 보이기 시작한다. 세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까지 하던 나는 늘 발을 동동거리며 살았다. 그 당시 내겐 해야 할 의무와 역할만 남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하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만 하면서 살기에도 삶은 버거웠다. 아이들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봐 줄 삶의 여유조차 없었다. 오로지 삶에 찌든 나만 보였다. 아침에 전쟁을 치르고 출근하는 차 안에서는 여지없이 눈물과 조우하는 날들이 잦았다.


 넷째와 함께 찾아온 이 갑작스러운 전업맘으로서의 전환이 마음의 여유까지 함께 가져왔다. 이 여유의 시간은 물론 재앙 이상이었던 입덧의 시기가 지나서부터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가자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도드라져 보여 마음고생을 했다. 전에는 사는 게 바쁘고 지쳐 모르고 넘어가는 일도 많았고 알면서도 야단칠 기운이 없어 모른 척하는 일도 많았다. 아이들의 마음보다 내 마음 챙기기 바빴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 전부이다.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는 내 삶의 전폭적인 지지자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엄마를 온전히 믿고 따른다.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엄마와 이어져 있던 아이와 엄마는 세상에 나와서도 쉽게 분리될 수 없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열 달 동안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동안 한 몸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는 진귀한 경험을 공유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엄마 젖을 찾아내어 온 힘을 다해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 엄마도 아직 아물지도 않은 몸을 아이에게 어떻게든 맞춰주면서 아이가 젖을 더 잘 빨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엄마와 아이는 한통속이라는 강렬한 느낌에 몸은 뒤틀리고 손목은 시큰거려도 기분이 좋다. 이게 아이와 엄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엄마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 말을 하기 시작한다. 다섯 살, 여섯 살이 되면서 자기 생각이 생기는 아이들은 이제 엄마 말을 무조건 따르진 않는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정말 우리가 한통속이 맞는지, 한통속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의심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가서 부모 재능기부로 매주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뱃속 아이와 나에게도 유익한 일이지만 누구보다 좋아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민혁아, 엄마가 오늘도 어린이집에 가서 동화책 읽어줄게. 좋지?"

 "엄마.... 엄마 그냥 어린이집에 안 오면 안 돼? 엄마가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해. 응?"

나는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오는 게 싫은 걸까? 잠시 망설이던 민혁이가 속에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가 동화책 읽어주는 것은 너무 좋은데 엄마가 왔다 가 버리면 나 마음이 너무 슬퍼."

어려서부터 둘째 민혁이는 유독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았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돌아오는 날도 난 민혁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민혁이가 엄마한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민혁아~ 민혁이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엄마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런데 이번에는 선생님들과 꼭 가겠다고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갑자기 안 갈 수는 없고 다음부터는 엄마 몸이 힘들어져서 못 가겠다고 하면 안 될까?"

조금 생각하더니 민혁이가 "응, 알았어. 이번까지만 와."라고 말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말은 이렇게 했어도 시간이 흐르면 민혁이 마음이 달라지거나 상황이 달라져서 다시 동화책을 읽어주러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 감정에 무딘 엄마였다.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우리 딸 민아가 갑자기 또 동화구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사실 엄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엄마가 동화구연하러 학교 온 날 있잖아. 엄마가 동화책 읽어주고 물고기 만드는 활동한 다음에 갑자기 집에 가 버리니까 마음이 이상하더라. 아니, 그냥 집에서만 엄마를 만날 때는 그냥 엄마는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헤어질 때 슬프지 않았는데 갑자기 학교에 엄마가 나타나니까 엄마 따라 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 아무튼 마음이 슬퍼지더라고. 이제 학교 오지 마."

초등학생인 민아는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차분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민아의 감정선을 따라가자 아이들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민혁이에 이어 민아 말까지 듣고 나자 마음이 이상해졌다. '이거야말로 동상이몽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한다고, 아이들이 당연히 좋아할 거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엄마가 아이들을 위한다고 했던 이런 일들이 아이들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늘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오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이의 의견을 수용할지는 다음 문제고 일단 아이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알고 공감해 줄 필요가 있다. 어떤 문제 행동을 했을 때 다그치거나 화를 내기 전에 아이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고 알아주기만 해도 아이는 금방 마음이 부드러워질 때가 많다. 육아는 가끔 전쟁이고 그 전쟁터에서 부상은 속출하기 마련이다. 부상자가 아이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한다. 허나,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린 한통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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